영세기업 죽이는 ‘39% 돌려치기’

친절한 사채업자의 은밀한 꼼수

2013-09-05     이윤찬ㆍ김성수 기자

이들은 은밀하다. 급전이 필요한 업체나 자영업자에게 은근슬쩍 접근해 돈을 빌려준다. 그런데 살인적인 이자를 달라며 으름장을 놓지 않는다. 대부업체 법정최고이자율 39%도 칼같이 지킨다. 갚을 돈이 없다고 하면 다른 사채업자를 친절하게 소개해준다. 5~6번씩 소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단번에 이자폭탄을 날린다. 사채바닥에선 이를 ‘39% 돌려치기’라고 말한다.

‘사채시장 큰손’ 김영환(가명)씨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상장사 대주주에게 수백억원의 자금을 빌려줬다. 김씨는 대주주에게 “금감원에 주금가장납입으로 고발해 회사를 상장폐지 시키겠다”고 협박해 1일 최고 4%(연 1460%)를 초과하는 살인적 고리를 갈취했다. 이 상장사는 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

김씨는 이자를 선취한 뒤 원금만 돌려받는 수법으로 탈세했다. 세무조사도 피하기 위해 형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우는가 하면 계약서ㆍ각서 등 서류 일체를 차명 개설한 은행 대여금고에 은닉했다. 탈루 금액은 437억원. 국세청은 지난해 김씨를 적발해 소득세 등 196억원을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사채업자가 기업인을 상대로 ‘먹튀’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단물만 쏙 빨린 기업은 그대로 무너지게 마련이다. 회삿돈을 목표로 손을 내미는 사채업자도 있다. 사채업자는 담보로 잡은 지분을 들고 경영에 참여하면서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방법 등으로 회삿돈을 빼돌린다. 회사는 빈껍데기가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미(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최근 금감원, 검찰 등에 적발되는 사례가 대부분 그렇다.

문제는 처음부터 기업을 통째로 노리고 접근하는 사채업자다. 작정하고 덤벼든 사채업자에게 걸린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유형의 사채업자는 협박ㆍ폭력은커녕 대부업체의 법정최고이자율(연 39%)도 위반하지 않는다. 그러니 당국에 걸릴 리 없다. 더 심각한 점은 이 수법에 걸려드는 기업 대부분이 영세하거나 프랜차이즈 업체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도 많다.

사채업자가 합법적으로 업체를 움켜쥐는 수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채업자는 먹잇감으로 적당한 업체를 물색한 후 타깃을 잡고 먼저 “도와주겠다”며 접근한다. 사채업자는 약속한 상환일이 다가오면 사업자를 채근하다 슬쩍 방법을 일러준다. 다른 사채업자를 소개시켜 주는 것이다.

사채로 사채를 갚은 사업자는 한동안 넋 놓고 지내다 만기일이 되면 똑같은 방식으로 또 다시 사채를 끌어 쓴다. 이런 식으로 5〜6바퀴만 돌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멀쩡한 업체를 날린다는 게 한 작전 세력의 귀띔이다. 그 바닥에선 이를 ‘돌려치기’라 한다.

사업자는 사채를 계속 빌린 게 화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고 보면 여러 명의 사채업자들은 한통속이다. 일당 4〜5명이 조직적ㆍ계획적으로 움직이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한 사채업자는 “궁지에 몰린 사업주는 결국 처음 돈을 빌린 사채업자를 찾게 돼 있다”며 “사채업자는 마지막으로 이자를 세게 붙여 돈을 빌려준 뒤 업체에 ‘칼질’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때 잘나갔던 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이 수법에 당해 3년째 사채업자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8년 전 가맹점을 늘리려고 20억원 가량의 급전을 빌려 쓴 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또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 S주점도 ‘39% 돌려치기’에 당해 무너졌다. 사채업자, 이젠 ‘합법’이라는 탈까지 썼다.
이윤찬ㆍ김성수 기자 chan4877@thescoop.co.kr|@chan4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