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 향한 진심 어린 찬사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2013-07-23     이병진 발행인

미국 골프사에서 보비 존스는 성인, 베이브 자하리아스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미국 언론은 박인비를 이들에게 견주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미국인들로부터 이처럼 찬사를 받은 사람은 없다.

지난 1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박인비의 시상식장에서 사회자는 “오늘 인비 박이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래 메이저대회 모든 우승을 이뤘다”고 소개했다. 박인비는 “자하리아스와 같은 선수와 이름을 함께 올린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답했다. 이제 남은 메이저는 브리티시오픈과 프랑스 에비앙마스터스인데, 미국 골프계에선 미국에서 열린 올해 나비스코챔피언십과 LPGA챔피언십에 이은 US여자오픈에서 전부 우승했으니 이미 그랜드슬래머로 인정하고 있는 것같다. 자하리아스 이래 최고의 선수란 뜻도 담겨 있다.

그동안 한국선수가 미국 LPGA투어를 휩쓸었지만 그때마다 무언가 2% 부족한, 그들에게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내가 느껴졌었다.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시상식에서의 코멘트에 이어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인비 박이 자하리아스와 함께 시즌 개막 후 메이저대회 3연승을 거둔 유일한 선수”라며 “현대 골프에서는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CBS스포츠는 “타이거 우즈•잭 니클라우스•아널드 파머•낸시 로페즈 등 살아있는 골프 전설들도 이루지 못한 일을 자하리아스, 보비 존스에 이어 인비 박이 해냈다”고 전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미국인으로부터 이처럼 ‘진심으로’ 찬사를 받은 사람은 단연코 없다. 미국인들에게 보비 존스와 자하리아스는 전설을 넘어서 각각 성인聖人, 여신女神 수준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보비 존스는 필자의 칼럼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해 생략하기로 하고, 자하리아스는 세계 모든 전문기관이 선정한 현대 스포츠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톱 10에 공통적으로 지명되고 있는 인물이다.

골퍼(사실은 스포츠맨)로선 놀랍게도 자하리아스 한명뿐이다. 1956년 45살 때 악성 직장암으로 요절한 그녀는 바로 지금의 LPGA 창립(1950년) 멤버이자 회장을 지냈다. 창립원년에 메이저타이틀을 싹쓸이했는데, 그 기록이 63년이 지난 박인비까지 깨지지 않았다. 프로레슬러인 사랑하는 남편의 이름을 딴 자하리아스의 처녀때 이름은 밀드레드 엘라 디드릭슨. 1932년 LA 올림픽 창던지기, 80m 허들 금메달, 높이뛰기 은메달리스트다.

175㎝ 62㎏로 대학 때는 전미 대학농구(NCAA) 베스트5.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체육연맹(AAU)이 대표선수선발전을 겸한 AAU선수권대회를 개최했을 때 디드릭슨은 최종선발전에 무려 10개 종목에 진출했다. 한꺼번에 치를 수 없어 3시간 동안 8개 종목에만 출전했는데 이중 5개 종목에서 우승했다. 출전했다하면 기록종목은 거의 전부가 세계신기록이었다. 개인 3종목으로 제한했던 올림픽에서도 세계신기록이 수두룩하다.

올림픽 기간 중 선수촌에서 잠깐 한가한 틈을 타 배운 게 골프. 올림픽이 끝난 뒤 골퍼가 돼 관계자들이 보는 가운데 필드에서 드라이버를 날렸는데 250야드 날아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때가 불과 18살이었다. 전성기 때 최대 315야드. 당시 남녀 골퍼 통틀어 최고수준이었다. 한번은 야구장에 나타나 외야에서 포수까지 직구로 공을 던지기도 했다. 결혼뒤 남편이 레슬러를 때려치우고 아내 매니저가 돼 자하리아스는 더욱 운동에 몰두했는데, 아침에 골프대회에 출전한 뒤 내셔널 테니스대회에서 17세트를 치르고 밤에는 볼링챔피언십에 출전하기도 했다.

지금 미국은 박인비를 보비 존스와 함께 이런 자하리아스와 비교하고 있다. 상상도 못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인의 이미지로는 절대 불가하다’는 필자의 미국에 대한 편견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세계 피겨여왕에 등극했을 때도 미국의 반응에 2%의 부족을 느꼈었다.

솔직히 박인비는 자하리아스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해 2009년 LPGA시즌에선 7번이나 컷오프됐었다. 딱히 골프 외에 자하리아스 같은 스포츠 재능도 25살인 지금도 드러난 게 없다. 그러나 미국은 링컨이나 오바마처럼 결과를 따지는 나라인 것 같다. 그래서 박인비를 자하리아스 옆자리에 앉힌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가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