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에 유혹당하면 카푸어로 전락

수입차 금융프로그램의 유혹

2013-09-17     박용선 기자

수입자동차업체(수입사)가 금융전략을 들고 나섰다.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지불하는 가격이 더 많다. 더욱이 할부금융에 혹해 비싼 수입차를 샀다가 ‘카푸어(Car Poor)’로 전락하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그 틈을 타 할부금융사의 배는 갈수록 부풀어오르고 있다.

‘수입사→딜러사→소비자’. 수입자동차업체(수입사)가 해외에서 차량을 수입하고, 국내 판매는 딜러사가 맡는 수입차 판매구조다. 이 과정에서 차량가격이 부풀려지면서 수입사가 이익을 챙긴다는 지적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판매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전부가 아니다. ‘수입차 할부금융사’가 딜러사와 소비자 사이에 껴 있다. 자동차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소비자로선 현금(일시불)보다는 할부ㆍ대출 등 파이낸싱을 이용해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BMWㆍ벤츠ㆍ폭스바겐 등 주요 수입사가 할부금융사를 자회사를 두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부 금융으로 유혹하다

문제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소비자들이 할부금융사에 혹해 비싼 수입차를 사면 ‘카푸어(Car Poor)’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카푸어는 경제력에 비해 무리하게 비싼 차를 구입해 신용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할부금융사는 이자, 중도해지 위약금 등으로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가 판매가격과 파이낸싱, 그리고 높은 부품가격을 이용해 소비자에게서 빼먹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빼먹고 있다”며 “수입차 시장이 투명해지지 않는다면 수입차 대중화의 길은 멀기만 하다”고 말했다.

수입차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수입차는 2012년 국내에서 13만858대가 판매됐다. 2011년 10만5037대보다 24.6% 증가했다. 올해 8월까지는 10만3417대가 팔렸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역대 최고 판매량 기록을 갈아치울 공산이 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소비 트렌드 변화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배기량이 낮은 수입차의 판매가 늘어났고, 덩달아 20~30대 소비자가 증가했다.

과거 국내 수입차 시장은 ‘비싸야 잘 팔리는 이상한 시장’이었다. 당연히 수입사와 딜러사는 고급과 고가 정책을 폈고, 시장에 제대로 먹혔다. 현재까지도 수입차 시장 판매 1위를 다투는 BMW 520d와 벤츠 E클래스의 가격은 5000만원 후반대에서 1억원 사이다. 이랬던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저렴한 차량’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한다.

5월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조사한 2008년 배기량별 수입차 판매 비중을 보면, 2000〜4000㏄급 중ㆍ대형차가 전체 시장의 65.8%를 차지하며 주력 모델로 꼽혔다. 하지만 올해 4월 누적 판매 동향을 보면, 2000㏄ 미만인 차량이 53.5%를 기록하며 전체 시장의 절반을 넘어섰다. 반면 같은 기간 4000cc 이상인 차량은 8%에서 2.5%로 급격하게 줄었다. 20~30대 젊은 소비자도 대폭 증가했다. 2012년 20~30대 소비자는 2011년 대비 50%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했다.

수입차 대중화 시대를 발 빠르게 준비한 건 수입사였다. 그들은 금융 전략을 내세웠다. 과거 수입사가 고급과 함께 비싼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했다면 이제는 금융 프로그램으로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줬다. 수입차로선 가격경쟁력이 생긴 셈이다. 특히 수입사는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으로 큰 재미를 봤다.

일반적인 자동차 할부금융은 할부기간 원금과 이자를 매월 상환하는 형태다. 하지만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차량구입과 동시에 차값의 30%를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 원금 중 10% 정도는 할부기간 이자와 함께 상환한다. 이후 할부기간이 끝난 후 60%에 이르는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기존에도 있었던 자동차 할부금융이다. 하지만 지금과는 성격이 다소 달랐다. 과거엔 차량을 구입할 때 내는 선납금의 비중을 높였다. 적어도 50% 이상을 지불했다. 추후 할부기간이 끝날 때 많은 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재의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원금의 60%가 할부기간이 끝나는 후반에 몰려 있다. 소비자가 이 돈을 내지 못해 ‘카푸어’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수입차를 원금유예할부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본래 차값은 총 4800만원이다. 하지만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으로 차량을 구입한다면, 우선 차값의 30%인 선납금 1500만원을 지불한다. 이후 3년 동안 매월 40만원을 낸다. 총 1400만원이다. 나머지 금액 2400만원(상환유예금)을 지불하면 모든 상환이 끝난다. 결국 총 5300만원을 내는 것이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으로 차량 구입 시 내는 돈과 매달 내는 돈이 적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500만원을 더 지불하는 것이다.

또 돈이 없어 선납금을 1500만원으로 줄인 고객이 3년 뒤 잔여금 2400만원을 낸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은 다시 할부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차를 팔아 돈을 만들어 원금을 갚아야 한다. 그런데 재할부에 들어가면 이자율이 약 2% 올라간다.

또 차를 판다고 해도 가격은 절반 이상 감소한다. 3년 전에 샀던 4800만원 짜리 수입차의 가격은 2000만원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게 보통이다. 3년 동안 선납금(1500만원)과 할부금(1400만원)으로 2900만원을 낸다. 이후 나머지 원금 2400만원을 갚기 위해 차량을 2000만원에 팔아 400만원을 또 할부금융사에 지불한다면, 그는 3년 동안 약 3300만원을 내고도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한 수입차 딜러는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차량을 구입하고 마이너스를 보면서 3년 후 차를 되팔고 또 다른 차량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 알맞은 할부 프로그램”이라며 “돈이 없는 사람이 구입 초기에 돈을 조금씩 내다가 할부가 끝나는 마지막에 원금 60% 이상을 왕창 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할부금융사 ‘웃고’ 소비자 ‘울고’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수입차의 유예할부 잔액은 2010년 497억원에서 2011년 607억원, 2012년 813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원금상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오는 시기라서 카푸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수입사의 할부금융사의 실적은 꾸준히 늘어났다.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5725억원과 영업이익 701억원을 기록했다. 3년 전인 2009년 매출 3147억원과 영업이익 308억원과 비교하면 각각 43%, 125% 증가했다.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2009년 2203억원, 69억원에서 지난해 3671억원, 269억원으로 증가했다. 3년 동안 영업이익 성장률은 무려 210%다.

수입차 판매가 늘수록 수입사 할부금융사엔 웃음꽃이 피고 있다. 하지만 차량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카푸어로 전락하는 등 곡소리만 높아지고 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brave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