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관습은 법보다 무섭다
프랑스의 ‘동성전쟁’
세계 각국에서 동성결혼 허용 관련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 동성애자를 법적으로 보호해 성소수자 차별철폐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과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문화와 관습은 법보다 느리게 변하게 마련이다.
올5월 21일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한 노인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되고, 프랑스 최초의 동성결혼식을 앞둔 시점이었다. 자살한 이는 78세의 프랑스인 도미니크 베네. 극우 성향의 역사학자 겸 칼럼니스트였던 그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는 7개국이다. 2001년 일찌감치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벨기에·스페인·스웨덴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재 유럽 대륙에서 동성결혼이 가능한 국가는 EU 비회원국인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를 포함해 총 9개국이다.
5월 ‘동성결혼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프랑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동성결혼 합법국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성별이 같은 (동성) 두 사람의 결혼을 법으로 인정하고 자녀 입양권을 부여’를 골자로 한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프랑스 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동성 부부에게 입양권을 주는 건 어린이에 대한 사실상의 살인 행위”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법안 통과에 찬성 의견을 표명한 의원들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릴에서는 스킨헤드족이 게이바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주목할 점은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게 프랑스만이 아니라는 거다. 올 5월 30일 러시아에서는 한 시민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웃 주민들에게 잔혹하게 구타를 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통적으로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에서 동성애에 대한 혐오는 다른 유럽 국가보다 심하다.
동성결혼 합법화됐지만 …
유럽 국가들뿐만이 아니다. 불가리아·헝가리·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 등 5개국은 아예 헌법으로 ‘혼인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규정해 놨다.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마저 사전 차단한 셈이다. 이탈리아·그리스·키프로스 등 유럽 7개국도 동성커플에 대해 아무런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한 이들 중 90%는 “항의조차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 3명 가운데 2명은 ‘차별과 따돌림이 두려워 학창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겼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주변 시선을 의식해 성적취향을 드러내지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동성결혼 합법화 물결이 일고 있지만 동성애 문화의 주류편입은 아직은 먼 이야기다.
정소담 기자 cindy@thescoop.co.kr|@cindyd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