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모욕 브랜드 800억 손실 ‘쓴맛’
외모 차별한 패션기업 뭇매
2013-06-14 김미선 기자
글로벌 패션기업의 외모·인종 차별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제품을 입으면 ‘더 예뻐진다’고 말해도 모자랄 판에 외모를 씹고,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다. 한 유명 패션기업 CEO는 “뚱뚱한 사람들이 우리 옷을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망언을 남겼고, 글로벌 패션기업은 외모를 이유로 직원을 잘라버렸다.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일본 내 기업의 성희롱과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마련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발단은 ‘프라다 소송전’ [참조 : The Scoop 통권 41호 56페이지]이었다. 프라다 본사에서 근무하던 리나 보브리스는 2009년 프라다 일본지사 리테일 운영매니저로 발령받았다. 그런데 출근과 동시에 인사 담당 매니저로부터 이상한 영令을 받았다. “못생기고, 뚱뚱하고 나이가 많은 매장 매니저와 직원 15명을 정리하라.”
이 명령을 부당하게 여긴 보브리스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불똥이 그에게 튀었다. 인사 담당 매니저는 보브리스를 미팅룸으로 불러 “프라다에 걸맞은 외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며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살을 빼라”고 지적했다.
프라다 외모차별 어땠기에…
올 4월 인터넷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는 “프라다는 보브리스에게 제기한 소송을 철회하라”는 청원이 올라갔다. 해당 청원을 올린 일본인 바레라 무라카미 아야코는 “이제까지 저지른 일만 봐도 충분히 잘못됐는데 힘없는 여성을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며 “용납하기 힘든 소송을 하루 빨리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에 동참하는 누리꾼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6월 6일(현지시간) 청원에 동참한 사람은 20만9600여명에 달한다.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워싱턴주 애드먼주의 스티브 긴은 “프라다가 브랜드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추한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매사추세츠 린에 거주하는 마이클 베이커는 “나는 늙고 뚱뚱하지만 프라다보다는 낫기 때문에 옷장 속 프라다 제품을 모두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보브리스가 프라다를 상대로 소송을 건 시점은 2009년이다. 벌써 4년이나 흘렀음에도 최근 들어 논란이 커진 이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소셜미디어의 발달과 관련이 깊다. 보브리스는 SNS 매체인 버즈피드(Buzzfeed)를 통해 “어떤 기업이든 그른 행동이나 사업을 하면 SNS를 통해 이슈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패션브랜드 ‘아베크롬비’도 비슷한 이유로 진통을 겪고 있다. 마이크 제프리스 아베크롬비 CEO의 말실수가 SNS 공간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어서다. 2006년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뚱뚱한 고객이 들어오면 물을 흐리기 때문에 엑스라지(XL) 이상의 여성 옷은 안판다”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그의 발언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전파됐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발언들까지 도마에 올랐다. “우리는 쿨한 사람들만을 위한 브랜드다” “전용기 승무원들은 아베크롬비 속옷을 입으라” 등의 몰상식한 말이다.
문제는 아베크롬비가 사과문을 내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되레 ‘아베크롬비는 노숙자가 입는 브랜드’라는 동영상이 제작되는 등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 블로거는 ‘아베크롬비앤피치(Abecrombi&Fitch)’를 빗댄 ‘Attractive &Fat’라는 패러디 광고를 만들어 ‘뚱뚱한 사람도 매력적일 수 있다’며 아베크롬비를 꼬집고 나섰다. 청소년의 섭식장애와 우울증을 반대하는 단체 Proud2Bme의 홍보대사 오키프는 “아베크롬비는 여성을 위해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제작해 팔아야 한다”는 인터넷 청원도 올렸다. 현재 7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을 했다. 오키프는 아베크롬비 경영진에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이상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모 차별하자 실적 추락
아베크롬비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점수를 따는 기업도 있다. 스웨덴의 SPA 브랜드 H&M이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는 여성 빅사이즈 제품을 제작함과 동시에 플러스 모델을 광고모델로 내세웠다. 최근에는 웹사이트에 플러스 모델이 입은 새로운 수영복 라인을 선보였다. 누리꾼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H&M 웹사이트에는 “우리 지역에도 플러스 사이즈 수영복을 팔아 달라” “현실적인 몸매의 여성 모델이다” “이 얼마나 신선한가”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속출했다. 칼 요한 페르손 H&M CEO의 개념 있는 발언도 호감을 사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브랜드는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거대 기업이고 광고도 많이 한다. 우리는 이런 광고를 통해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인식을 주기보다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다.”
스페인 SPA 브랜드 망고도 플러스 사이즈 제작에 나설 계획이다. 이 브랜드는 미 패션전문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WD)에 “플러스 사이즈 라인의 확장을 통해 2019년까지 매출을 두배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플러스 사이즈 제품으로 ‘슬림함’이 콘셉트인 자라(ZARA)를 추월하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패션 브랜드의 차별논란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 소비자를 차별하는 패션·뷰티기업은 비일비재하다. 마케팅 리서치 업체 ‘키’의 창업자이자 CEO인 로버트 페시코프는 “많은 기업이 특정 타깃층만 노린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특정 소비자를 거부하고 있는데 (정작 소비자들이) 이를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외모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아베크롬비 CEO가 과도하게 솔직했을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패션·뷰티기업이 모르는 게 있다. 요즘 소비자는 똑똑하다. 차별하면 지갑을 열지 않는다. 외모차별로 논란을 일으킨 아베크롬비는 올 1분기 7200만 달러(약 800억원)의 손실을 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 @story6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