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林카드’ 뽑았나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
KB금융지주를 이끌 새 수장이 내정됐다.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이 그다. KB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임영록 사장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KB금융지주 노조는 벌써부터 ‘출근저지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이 KB금융지주의 신임 회장으로 내정됐다. KB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는 6월 5일 제5차 회의를 열고 “임영록 후보를 KB금융지주 차기회장에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4월말 어윤대 현 KB금융그룹 회장이 연임포기를 선언하면서 KB금융그룹의 차기회장 인선작업은 숨가쁘게 진행됐다.
5월 8일 구성된 회추위는 차기 회장 선정에 대해 “최고경영자(CEO)로서 품성과 자질을 갖추고, 리더십이 있으며, 금융산업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차기 KB금융지주 회장에는 모두 11명이 후보에 올랐다. 6월에 접어들면서 최종 심층면접에 나설 4명의 후보로 압축됐다.
최종 후보는 민병덕 국민은행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 임영록 내정자였다. 이 중 민병덕 행장과 임 내정자가 2파전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임 내정자가 우세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회추위 회의 결과 만장일치로 임 내정자가 차기 회장으로 추천됐다. 고승의 KB금융지주 회추위 의장은 “임 내정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높이 사고 그가 제시한 비전에 공감했다”며 “관료 경험을 지녀 대외교섭능력에 뛰어날 것이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동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대학원과 한양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임 내정자는 1978년 행시 20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전형적인 경제관료의 길을 걸었다. 그는 옛 재경부에서 경제협력국장과 금융정책국장을 거쳐 제2차관까지 올랐으며 기획재정부에서도 차관을 역임했다. 2010년 어윤대 회장 취임과 함께 KB금융지주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금융시장의 경험을 쌓았다.
낙하산 논란으로 출근 못해
사실 임 내정자는 KB금융지주에서의 위치가 애매하다. 3년 동안 KB금융 사장으로 재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부인사라고 할 수 있지만 정통관료 출신이기 때문에 외부인사 성향이 강하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임 내정자를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노조에서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5.4%가 임 내정자를 ‘외부출신 인사로 봐야 한다’고 나타났다.
회장 선출 과정 막판에 터져 나온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발언도 노조의 불만을 키웠다. 신제윤 위원장은 6월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료출신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그룹 회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수장의 이런 시그널이 임 내정자에게 ‘몰표’가 쏠린 원동력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유력후보군이 뻔히 다 추려진 상황에서 금융에 관한 전권을 쥐고 있는 금융위원장이 관료 출신을 특정한 것이 낙하산 인사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불만을 표했다. 정치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6월 7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정부가 단 한주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지 않은 KB금융지주 인사를 정부가 종횡무진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비교적 무난하게 회장 임명작업이 진행된 우리금융지주와는 달리 임 내정자가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정식 선임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의 반발만큼 금융권의 관심을 끄는 건 임 내정자가 우리금융지주와의 인수합병(M&A)을 어떻게 추진할지다. 금융당국에서 관치 논란을 무릅쓰면서 임 내정자를 지명한 건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우리은행을 빠르게 매각할 방침을 세웠다. 우리은행의 일괄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일괄매각은 다른 회사에 완전히 흡수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금융을 인수할 능력을 가진 금융사는 KB금융지주밖에 없다. 임 내정자의 임명과 우리금융 M&A를 연결하는 시각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 내정자는 정부와의 관계가 원만하기 때문에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작업을 순조롭게 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금융지주가 KB금융지주에 일괄매각되면 구조조정 폭풍이 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양대 금융기관의 겹치는 지점•인력을 감안하면 30%가 넘는 양사 인력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자리를 잃게 될 조직원들의 반발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계열사 임원에 대한 후속인사 또한 임 내정자에게 주어진 몫이다. 임 내정자와 회장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 민병덕 행장은 회추위의 선출회의가 끝난 직후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에게 사의를 표했다. 민 행장은 “조직에 계속 남아 있으면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며 “임 내정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미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차기 행장으로는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과 윤종규 KB금융 부사장, 김옥찬 국민은행 부행장 등이 거론된다. 이들 후보군 중에선 최기의 사장이 다소 앞서 있다는 분석이다. 새 KB국민은행장은 임 내정자의 공식 취임 후 선출될 예정이다. 임 내정자의 회장 선임으로 공석이 될 KB금융지주 사장직에 대한 인선도 서둘러야 한다.
금융권 빅뱅 가능할까
임 내정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는 우리금융지주에 빼앗긴 ‘리딩금융그룹’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2001년 주택은행과 합병 당시 KB국민은행은 총 자산이 185조원으로 101조원 규모의 우리은행을 크게 앞서 있었다. 당시 63조원 규모였던 신한은행과는 3배 가까운 격차였다.
그러나 10년여가 흐른 지금 상황이 바뀌었다. 올 1분기 기준 KB금융지주의 자산은 368조원으로 418조의 우리금융지주에 비해 떨어진다. 순이익은 4115억원으로 4813억원을 기록한 심한금융지주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리금융지주•신한금융지주에 비해 인수•합병(M&A) 작업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러모로 임 내정자의 어깨가 무겁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allint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