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명단 공개 주가는 ‘무덤덤’
조세피난처 악재의 역설
2013-05-27 이기현 기자
OCI•효성•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련 회사의 주가는 무덤덤하다. 당일 급락했다 회복하거나 미미한 하락세를 보이는 정도다. 반면 CJ는 상황이 다르다. 세 기업이 단순 계좌 공개라면 CJ는 현재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조만간 주가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재벌가의 ‘조세피난처 계좌보유’ ‘해외 비자금 조성’ 등 파장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5월 23일 관련 주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일부 종목은 오히려 반등하기도 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OCI는 전 거래일(14만8500원)보다 0.34%(500원) 내린 14만8000원에 장을 마쳤다. 장 중 2.02%까지 올랐다가 하락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낙폭은 미미했다.효성은 오히려 반등에 성공했다. 23일 효성은 전 거래일(5만8000원)보다 1.90%(1100원) 오른 5만9100원에 마감했다. 전날 4.29% 급락했지만 하루 만에 상승 전환한 것이다. 대한항공 주가는 23일 3만5959원을 기록했다. 전 거래일(3만7000원)보다 2.84%(1050원) 하락하는 데에 그쳤다.
이들 종목은 22일 오너 일가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락했다.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는 22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결과물을 발표, 재벌 총수 등 245명의 한국인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이번에 공개된 명단에는 이수영 OCI 회장(전 경총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인 이영학씨와 조욱래 DSLD(옛 동성개발) 회장도 포함됐다. 조욱래 회장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막냇동생이다.
이들과 같은 지역인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역외탈세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CJ그룹주도 반등하거나 낙폭을 축소했다. 23일 CJ는 전 거래일(12만2500원)보다 0.82%(1000원) 오른 12만3500원을 기록했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대진)가 거액을 탈세해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받고 있는 CJ그룹을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이틀간 6% 이상 급락했지만 이내 상승 흐름을 되찾은 것이다. CJ대한통운(0.46%), CJ오쇼핑(0.63%) 등도 소폭 올랐다. 반면 CJ씨푸드(-0.82%), CJ헬로비전(-0.56%), CJ CGV(-1.05%), CJ E&M (-2.52%) 등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사건은 단기적으로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도 “오히려 기업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측면이 강조돼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OCI•효성•대한항공 3개 기업은 뉴스타파가 단순히 명단을 공개한 수준일 뿐, 실제로 자금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한 게 밝혀진 것이 아니다. 앞으로 국세청의 조사가 예상되고 있지만 아직은 주가를 크게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반면 CJ는 이미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고, 역외탈세와 비자금 조성과 관련 구체적인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3개 기업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증권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CJ는 비자금 의혹으로 해외 투자가 지연 또는 취소되거나 이재현 CJ 회장이 구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컨트롤타워 부재와 해외 성장스토리가 사라진다면 당연히 주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기현 기자 lhk@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