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스탬프를 얼굴에 찍어라

[Special 파트1] 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에어쿠션’

2013-05-24     강서구 기자

여름에 꼭 필요한 자외선 차단제. 여성에겐 필수품이지만 불편한 게 많았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 화장이 뭉쳐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약점을 포착한 한 화장품 업체 연구팀이 ‘흐르지 않는 액체’를 활용한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었다. 과학을 심은 이 자외선 차단제는 대박을 터뜨렸다. 아모레퍼시픽의 ‘아이오페 에어쿠션’ 이야기다.

2007년.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연구2팀에 미션이 떨어졌다. ‘사용과 휴대가 편리한 자외선 차단제를 개발하라.’ 기존 자외선 차단제의 문제점을 해결한 제품을 개발하라는 얘기였다. 

연구팀은 분석에 들어갔다. 기존 자외선 차단제는 유중수형(water in oil)과 수중유형(oil in water)으로 나뉘었다. 유중수형은 지속성이 강해 땀과 물에 지워지지 않지만 질감이 끈적여서 사용하기 불편했다. 반대로 수중유형은 산뜻하게 발려서 끈적임은 없지만 지속성이 떨어졌다. 자외선 차단제가 튜브나 펌프 타입의 용기에 담아 출시한 것도 소비자의 불만 중 하나였다. 사용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휴대하기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산뜻하게 발리면서도 사용과 휴대가 간편한 자외선 차단제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원 중 한명이 의견을 냈다. 휴대성을 높이기 위해 콤팩트 같은 유형의 액체 자외선 차단제를 만들자는 거였다.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떤 소재로 개발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때 최경호 팀장(메이크업연구2팀)의 머릿속에 불현듯 스친 아이디어가 있었다. 주차장에서 사용하는 ‘스탬프’였다. 티켓에 확인 도장을 찍어주는 스탬프는 액체가 흐르지 않으면서도 균일하게 찍혔다. 스탬프의 원리를 자외선 차단제품에 녹여내면 사용성과 휴대성 문제가 해결될 듯했다. 아모레퍼시픽이 ‘흐르지 않는 액체’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연구팀은 스탬프 역할을 할 수 있는 재질을 찾았다. 흡수력이 우수한 스펀지가 적합해 보였다. 연구팀은 목욕용•문구용•소파용 등 다양한 재질의 스펀지에 자외선 차단제를 흡수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발포우레탄이 가장 높은 흡수력을 보였다. 발포우레탄은 단열이나 방음을 위해 건물의 빈 공간을 채울 때 사용하는 자재 중 하나다.

연구팀은 발포우레탄을 활용해 스펀지가 자외선 차단제 내용물을 머금고 있는 제형을 만들었다. 스탬프처럼 자외선 차단제를 발포우레탄인 스펀지에 넣어 찍어 누르면 액체가 배어나오게 한 것이다. 신기술이라고 평가받는 ‘Cell Trap’(액체 안정화 제형) 기술이다.

연구팀은 여기에 한가지 아이디어를 더했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를 수 있도록 도구를 추가한 것이다. 수분 흡수율이 뛰어난 ‘퍼프’(루비셀 퍼프)다. 퍼프는 3중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상단부에 필름막을 덮어 퍼프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했다. 중단부에는 자외선 차단제가 피부에 밀착될 수 있도록 쿠션을 넣고, 하단부는 미세한 피부 조직처럼 제작해 뭉치지 않고 피부에 균일하게 발리도록 제작했다.

발포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스펀지와 퍼프의 조합은 찰떡궁합이었다. 자외선 차단제 내용물을 찍은 퍼프는 피부에 닿으면 촉촉하고 시원했다. 스펀지 내용물을 퍼프에 이용해 바르면 바르기 전보다 피부 온도가 3도 가량 떨어지는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 에어쿠션’을 출시했다. 에어쿠션은 지난해 단일제품으로 1000억원의 매출을 돌파했다. 이 제품에 포함된 특허는 21건(국제 특허출원 20건)에 달한다. 아모레퍼시픽의 탄탄한 기술력이 맺은 값진 열매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ksg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