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없는데 그가 있다
Performance Review | 뮤지컬 그날들
가수 김광석(1964~1996)의 노래로 엮은 창작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에는 김광석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를 소재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초상권 등의 문제 탓에 ‘김광석 뮤지컬’이라고 홍보도 할 수 없다. ‘그날들’의 주인공은 김광석 없이도 김광석을 풀어낼 수 있는 소재인 뮤지션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도 않는다. ‘경호원들’이 전면에 나선다.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인 청와대가 배경이다. 대통령의 딸과 수행 경호원의 사라지자 행방을 뒤쫓는 경호부장 ‘정학’ 앞에 1992년 자취를 감춘 경호원 동기생 ‘무영’과 ‘그녀’의 흔적이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날들’에는 오묘하게도 김광석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장유정 연출의 “김광석씨 노래를 갖고 만들다보니, 그가 어렵고 힘든 시간마다 우리에게 위로를 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처럼 ‘김광석 노래’가 안기는 진심은 마치 돌직구처럼 파고든다. 더구나 정학이 무영과 그녀의 자취를 찾아가는 미스터리적인 분위기가 김광석과 관련한 신비한 기운까지 끌어안으면서 그에 대한 느낌이 더욱 부각된다.
이렇게 장 연출은 김광석을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김광석과 그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어감과 색깔을 살려내는 묘를 발휘한다. 다만, 장유정 연출과 ‘형제는 용감했다’ ‘금발이 너무해’ 등에서 호흡을 맞춘 장소영 음악감독의 과감한 편곡이 낯설 수는 있다. 가끔 과잉되거나 가볍다. 그러나 극과 음악이 최적화되는 접점을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다.
이 뮤지컬의 또 다른 장점은 실커튼과 영상, 회전무대를 활용한 시공간 연출이다. 이 덕분에 정학을 주축으로 1992년과 2012년을 오가는 인물들의 동선과 연기가 어색하지 않다.
대통령 경호실 경호2처 부장이자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인 정학은 뮤지컬배우 오만석이 연기한다. 김광석의 목소리와 비슷한 오만석은 정학의 애틋한 마음의 농도를 짙게 만든다. 탤런트 지창욱은 여유롭고 재치있는 자유로운 영혼의 무영을 맡아 밝고 생기로움을 마음껏 뽐낸다. 정학 역에는 유준상과 강태을이 오만석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됐다. 무영은 지창욱과 뮤지컬배우 최재웅, 그룹 ‘클릭비’ 출신 가수 겸 뮤지컬배우 오종혁이 나눠 맡고 있다.
정리 |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ksg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