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심화 쉰들러는 딴죽
현대상선의 이중 위기
2013-05-08 박용선 기자
현대상선이 돈맥경화에 시달리고 있다. 2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업계 안팎에선 ‘현대상선이 유상증자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을 세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현대상선은 실제로 현대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려 유상증자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독일 쉰들러그룹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5월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전일 대비 9.85% 하락한 924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올해 1월 2일 2만4050원과 비교하면 무려 1만4810원이 떨어졌다. 이 회사엔 대체 무슨 일이 있는걸까.무엇보다 현대상선의 실적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영업손실만 5096억원을 기록했다. 2011년(-3573억원)에 비해 약 60% 악화됐다. 당기순손실은 9885억원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다. 실적부진에 부채상환이라는 짐까지 떠안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은 4월 30일 자사가 보유한 KB금융지주 보통주식을 담보로 1304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서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회사 측은 이 자금을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순차입금은 회사채 잔액 2조5500억원을 포함해 총 6조3000원에 달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7200억원이다. 1분기 상환한 2400억원을 제외하면 올해 48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만기연장하거나 상환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계열사다. 현대그룹 지배구조는 현대상선이 그룹 캐시카우로 현대증권•현대아산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대상선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가 돈맥경화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상선이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려 유상증자를 실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의 지주회사로, 현대상선 지분 24.2%(최대주주)를 갖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계획 물거품
현대상선은 “유상증자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고 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유상증자 자체가 여의치 않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지분율 35%) 독일 쉰들러그룹이 유상증자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 실시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증자자금을 현대상선 지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쉰들러와 유상증자를 놓고 재판을 벌이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올 7월까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유상증자계획 역시 잠정 연기됐다.
현대상선은 현재 운임채권•설비 등 자산유동화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업계는 현대엘리베이터가 7월까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그 이후에야 유상증자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현대상선이 쉰들러와의 법정공방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이 재무적 투자자로 들어온 쉰들러에게 제대로 발목이 잡힌 격이다. 이런 이유로 경영에 경고등이 켜진 게 더 심각한 문제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brave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