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다
유영만의 생각체조
생각을 의미하는 한자 思는 ‘밭田+마음心’의 합성어이다. 밭을 의미하는 ‘田’은 본래 인간의 숨골, 다시 말해 ‘이성’을 의미한다. 감성心의 기초 위에 이성田이 작동하는 것이 생각 ‘思’이다. 생각 ‘思’를 보면 마음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생각이 있다.
앎은 속일 수 있지만 느낌은 속일 수 없다. 가슴으로 느낀 감정이 머리로 올라가면서 희석되고 탈색되고 변색되는 것이다. 느낌은 솔직하다. 느낌이 앎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관적 감정을 논리적 언어로 바꾼다. 논리적 언어는 감성적 느낌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낀다. 가슴으로 느낀 점을 머리가 모두 이해할 수 없다. 머리는 생각하지만 가슴은 느낀다.
우리는 지금까지 느낌보다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철학의 중요한 탐구대상으로 간주돼 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교육에서 최우선적으로 개발해야 할 분야였다. 느낌은 변덕스럽기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이나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뜻한 가슴(warm heart)보다 냉철한 이성(cool head)을 강조했던 것이다.
“머리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하지 않고 “가슴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한다. 상식적으로 머리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슴이 생각한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이 생각하는 것이 더욱 진정성이 있다는 얘기다. 머리는 거짓말을 하지만 가슴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 느낀 점을 머리로 생각하면서부터 이른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오만가지 잡생각으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 구상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느낌은 느낀 대로 표현되지 않고 논리적 언어로 재단되기 시작한다.
‘시어머니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고, 친정 엄마가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있다. 왜 그럴까. 결혼한 여성만이 그 답을 알 수 있다. 머리 아픈 것과 가슴 아픈 것의 차이는 의미심장하다. 의미가 머리에 꽂히면 골치가 아프고 의미가 가슴에 꽂히면 의미심장해진다. 의미심장한 의미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감동적인 의미만이 행동하게 만든다.
생각을 의미하는 한자 思는 ‘밭田+마음心’의 합성어이다. 밭을 의미하는 ‘田’은 본래 인간의 숨골, 다시 말해 ‘이성’을 의미한다. 감성心의 기초 위에 이성田이 작동하는 것이 생각 ‘思’이다. 생각 ‘思’를 보면 마음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생각이 있다. 생각도 마음을 기반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감성은 대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느낌이다.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끼기 때문이다. 느낌이 오지 않는데 계속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설령 이해가 됐어도 마음이 후련하지 않고 찜찜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지루하지만 감성적으로 ‘설득’하면 눈에 광채가 난다. 감성적 ‘설득’ 없이 논리적 ‘설명’으로 일관할 경우 “그래 너 잘났다. 너나 잘해라!”고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가슴 속 깊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머리로 이해가 됐지만, 손발을 움직여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아직도 미력하다. 마음이 움직여야 감동感動이 다가온다. 감동해야 행동行動한다.
위대한 리더일수록 팀원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공략한다. 그는 시간이나 일을 관리하지 않고 팀원의 마음을 관리한다. 마음을 움직이면 시간과 일은 팀원이 알아서 관리한다. 나아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고 몰입한다. 팀원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리더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칠 수 없다不及는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늘 취醉하라고 했다. 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다. 취한다는 이야기는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에 흠뻑 빠지는 일이다.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야만 한다. 빠지지 않으면 빠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