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과장 보고서 만든 투자은행에 벌금 물려

[Cover 파트3] 美 시스템에서 배울만한 과징금 제도

2013-04-24     김태엽 소셜정책 연구위원

정부가 발표한 주가조작 근절대책에서 ‘과징금 규제안’이 제외됐다. 정부는 과징금 부과 대신 처벌수위를 높이고, 부당이득을 환수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징금은 행정처벌의 대표수단이다. 이번엔 빠졌지만 언젠가는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도 과징금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속전속결로 조사해 강하게 엄벌한다.” 정부가 4월 18일 발표한 주가조작 근절대책의 핵심이다. 조사에서 처벌까지 3년 넘게 걸리던 주가조작 사건을 3~5개월 안에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처벌수위를 높였다. 주가조작으로 챙긴 부당이득은 환수하고 제보•신고포상금을 ‘로또 수준’으로 올렸다.

하지만 과징금 규제는 유보됐다. 과징금은 미공개 정보이용•시세조정•부정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는 적용하지 않고 이보다 수위가 낮은 ‘신종 시장질서 교란행위’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신종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현행법상 규제를 받는 불공정거래에 속하지 않는 불공정거래를 말한다.

가령 A기업의 내부기밀을 이용해 사장의 친동생과 그의 지인이 주식을 매입해 시세차익을 남겼다고 가정해보자. 지금은 친동생만 ‘1차 수령자’로 처벌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동생의 지인인 2차 수령자도 시장질서 교란행위자로 간주해 과징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진짜 불공정거래 행위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어 논란이 일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펄펄 날고 있는 작전세력을 통제할 수 있는 핵심전략을 포기했다는 이유에서다. 2011년부터 불공거래에 대해 과징금 부과방안을 추진했던 금융위원회도 아쉬워하고 있다. 물론 과징금 제도는 주가조작의 예방적 근절대책이 될 수 있다. 형사적 절차에만 의존하던 불공정 거래행위 근절대책의 보완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징금 제도를 도입하려면 고려해야 할 게 있다. 먼저 과징금은 주가조작의 주체인 ‘위법행위자’에게만 부과돼야 한다. 주가조작의 객체客體에 불과한 상장기업에 과징금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만약 대주주와 임원의 주가조작행위를 상장기업이 책임진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선의의 투자자들에게 경제적 손실을 안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징금 부과방안 검토할 것 많아

대주주와 임원이 몰랐을 경우도 고려해야 한다. 상장기업을 둘러싼 정보와 소문은 과거와 달리 인터넷상에 넘쳐흐르고 있다. 다양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서도 기업정보가 흘러나오기 일쑤다. 이 때문에 기업의 오너•대표•임원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주가조작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가를 조작하는 세력은 팀플레이 형식으로 악성루머를 퍼트리고 빠져나가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기업 오너•대표•임원을 비롯해 해당 기업에까지 과징금을 물린다면 기업의 실제가치가 떨어져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주가조작 위법행위자를 특정해 처벌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징금 규제방안을 검토할 때 고려할 점은 또 있다. 허위보고서 작성에 개입하거나 투자자를 오도하는 분석보고서를 만든 애널리스트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이는 2003년 4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뉴욕검찰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SEC와 뉴욕검찰은 벤처기업의 실적 등을 부풀려 만든 투자리포트를 발표하고 기업공개(IPO)와 연계해 부당이익을 챙긴 살로먼스미스바니(미 시티은행),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메릴린치 3개 투자은행을 ‘사기성 리서치 자료 배포’ 혐의를 들어 벌금을 부과했다. 다른 7개 투자은행도 ‘과장되거나 보증할 수 없는 리서치 자료 배포’ 혐의로 벌금을 냈다.

더 중요한 점은 불공정 거래행위를 이유로 거둔 과징금을 주가조작의 피해를 받은 국민에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징금의 용처를 선량한 투자자에 대한 1차적 피해를 보상하는 데 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과징금으로 거둬들인 수익은 모두 경상이전수입(벌금•몰수금•과태료 등)이기 때문에 국민의 안녕과 공공복리를 위해 쓰여야 한다. 언뜻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가 2010년 8월 발표한 ‘공정위 과징금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이라는 이슈리포트를 살펴보면, 공정위•방통위를 비롯한 정부부처(기관)이 거둬들인 경상이전수입은 어떤 목적으로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정부부처가 불법•부정경쟁 기업에게 부과한 과징금이 국고로 귀속됐음에도 정작 이 기업 때문에 피해를 입은 국민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일쑤다. 국민이 불법•부정경쟁기업을 상대로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 피해를 구제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정부부처의 경상이전수입 중 일부를 불법•부당경쟁기업에 피해를 입은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징금을 신고포상금 명목으로 활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불공정 사례를 기업 내부의 신고로 적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별도의 ‘기금’을 편성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파격적이지만 생각해 볼 만한 제안이다. 지난해 정부 부처나 기관 등에서 거둔 경상이전수입의 규모는 대략 3조2600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고용노동부 세출 1조3657억원의 2.4배 규모다. 이 정도의 재원을 잘 활용한다면 장애•노인 등 저소득 서민층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더불어 ‘국민행복시대’를 열고자 하는 새 정부의 정책공약을 뒷받침하는 재원으로 사용 가능하다.
과징금 사용처 명백하게 밝혀야

익명을 원한 경제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첫째는 정부부처가 과징금 목표치를 미리 설정하고 임의적으로 징수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이렇게 조성된 재원이 해당조직의 운영자금으로 전용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국민은 갖고 있다. 불법•부정행위를 적발해 징수한 과징금이 정작 국민에게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아서다.

이참에 정부는 과징금을 비롯한 모든 경상이전수입에 대한 조성명분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사용처에 대해서도 국민에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과징금 징수와 사용처를 모니터링하는 국민감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태엽 소셜정책 연구위원 ohseyo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