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목소리 내야 시장에 약발 먹힌다
한은-기재부 금리 충돌 논란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몫이다. 경기부양은 기획재정부의 역할이다. 기준금리 변동을 두고 한은과 기재부가 기싸움을 벌이는 이유다. 하지만 한은과 기재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통에 시장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 관련 발표를 해도 시장은 기재부 눈치를 보기 급급해서다.
이성태 한국은행 전 총재는 2009년 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기준금리 인상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경기는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금리인상론이 떠올랐다. 물가안정을 위해 시장에 푼 돈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에서였다. 이를테면 ‘출구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성태 전 총재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돈을 끌어들인 만큼 시장에 활력이 돌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2009년 11월 12일 기준금리는 연 2%로 동결됐다. 9개월째 동결이었다. 이 전 총재는 “정부가 빠진 자리를 민간이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며 기준금리 동결 이유를 밝혔다.
문제는 이 전 총재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당시)의 의견이 번번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이 전 총재가 금리 관련 발언을 하면 윤증현 전 장관이 맞받아치는 형세였다. 똑같은 현안을 두고 다른 의견을 쏟아낸 셈이다. 두 사람의 엇갈린 반응은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사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정책을 발표하면 시장이 움직여야 한다. 2009년 11월처럼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동결했으면 당장 시장에 ‘활력 시그널’이 울려야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시는 달랐다. 금리동결이 발표됐음에도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총재를 제외한 다른 정부 관료들이 금리인상을 줄기차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을 결정하는 한은 총재의 말보다 다른 정부 관료의 발언에 힘이 실린 셈이다.
“금통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례적인 발언조차 달지 않은 채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시장은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지금은 기준금리가 동결됐지만 5월에는 오를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기준금리 결정권은 한은의 고유 권한이다. 영향력 있는 정부 관료와 외부의 말이 많으면 한은의 신뢰가 떨어져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일관된 주장을 펴야 한다.
안에선 격렬하게 토론하고 바깥으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이 나왔을 때 시장이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2009년 1월 22일. 경제지표가 악화되고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이에 따라 달러화는 엔화에 약세를 띠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 재무부 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상원의 인준 청문회에 참석했던 티머시 가이트너가 “강한 달러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발언하자마자 엔화에 대한 달러화의 약세기조가 멈췄다. 재무장관 내정자의 말 한마디가 미 외환시장을 살린 것이다.
신뢰 있는 당국자의 말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우리 경제 브레인들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사례인 듯하다. 함부로 밖에다 이런저런 소리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조율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 | @ksg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