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 보는 순간 주가는 ‘하락세’ 탄다
이난희의 Let's make money
주식시장에는 변수가 가득하다. 이런 변수는 때론 상승세를 부르고, 때론 하락장을 초래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늘 변수에 따라 쥐락펴락되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주식시장도 변수에 대한 ‘내성耐性’을 갖췄다. 어쩌면 지금처럼 막연하고 변수가 많은 시장에서 주가가 더 오를지도 모른다.
주식시장은 항상 명분을 갖고 흐른다. 주가가 떨어질 땐 그만한 이유가 있고, 상승곡선을 그릴 때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주가의 지표를 보고 있으면 하락할 시점에서 악재가 터지고, 상승할 시점에서 호재가 터져 나온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주가가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시퀘스터’라는 용어를 많이 들을 수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삭감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2011년 부채한도 조정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조항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12년까지 재정적자 감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2013년부터 10년 동안 1조 2000억 달러가량의 정부지출이 자동 삭감된다.
시퀘스터, 주한미군 방위분담비에 영향
지난해 미국 대선 때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재정절벽으로 인한 재정적자를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시퀘스터를 ‘미트클리버(meat cleaver ·고깃덩어리를 자르는 큰 칼)에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과의 의견차를 줄이지 못해 시퀘스터가 3월 1일 발동했다. 임시 예산안이 완료되는 3월 27일까지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지만 시퀘스터가 발동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시퀘스터가 현실화되면 국방·교육·복지부문에서 지출 삭감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75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성장률이 하락한다. 경기가 살아나야 살 수 있는 중산층의 삶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시퀘스터 영향으로 미국경제가 수렁에 빠지면 세계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 미 정부의 2013년 자동 예산삭감 내용을 보면 845억 달러(약 92조원)에 이른다. 이 중 국방비 예산감축이 460억 달러다. 국방비 예산이 미국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삭감 부분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 우리나라에 후폭풍이 분다. 미국의 국방비를 감축하면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비율이 현재 42%에서 50%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분담비를 계속 높여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2013년 정부 예산안에서 국방비 예산을 증액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미국의 분담비 증액 요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은 이제 갓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게 부담이다. 북핵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까지 골머리를 썩이면 부담은 배가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여태껏 정부조각마저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3월 5일까지 통과됐어야 하지만 여야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사퇴의사를 밝힘으로써 주식시장에선 308억원이라는 돈이 증발했고, 이 피해는 개인투자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주식시장에는 악재가 있게 마련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이 감기에 걸린다는 말처럼 미국지표가 떨어지면 국내 주식시장은 더 떨어지곤 했다. 북한의 도발징후가 조금이라도 포착되면 주식시장에선 하한가 종목이 속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국내 주식시장은 내성耐性을 갖고 있다. 어떤 변수가 나와도 주식시장에선 별 동요가 일지 않는다.
글로벌 경제는 아직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세계 주식시장은 물론 국내시장은 고점을 뚫기 위해 전진하고 있는 형국이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사는 곳이다. 눈앞에 결과물들이 나타났을 땐 주식시장은 내려갈 자리를 보고 있다.” 주식은 선행지표를 따라 간다는 이야기다.
좀 더 쉽게 비유해보자. 남녀가 연애를 할 때 서로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손만 잡는 상상만 해도 온몸에 전율이 통한다. 그러다 입맞춤을 하고 잠자리를 함께하면 손을 잡기 전 환상이 깨질 때가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들에게 ‘사랑해서 사느냐’고 물으면 ‘사랑은 무슨 사랑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라고 말하는 거다. 이는 보일 듯 말 듯한 신비감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비롯되는 현상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미궁에 있을 때 막연한 기대감이 생기고, 이를 원동력으로 주식은 상승세를 탄다. 실적이 무척 개선됐다는 공시가 나오는 순간 주가가 곤두박질치곤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막연한 기대감에 치솟는 주식의 섭리
지금이 그런 시기다. 경제지표는 초라해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기대감을 키우고 있고, 이는 상승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금 주식시장에는 지하경제에서 떠도는 자금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자금이 혼재돼 있다. 한없이 눈치를 보면서 베팅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듯하다. ‘혹여 지금 들어갔다가 고점에서 물리는 게 아닐까’라는 노파심이 베팅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엔 기회가 있다. 기지개를 펴고 있는 주식시장 무대에 선수로 오를지, 대기선수로 남을지를 가르는 것은 결국 용기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식물에게 필요한 물·햇빛·공기·거름을 아낌없이 줬다. 그 런데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 럼 꽃은 영원히 피지 않을까. 그렇지 않을 게다. 꽃은 어떤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게 마련이다. 지금 주식투자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 바로 이것이다. 시장에 과감히 맞서는 투자자의 결단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