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侍의 처참한 역습

곽대희 性 칼럼

2013-03-11     곽대희 원장

사람이든 동물이든 출생하면 생식기부터 확인한다. 그 생명체의 주체가 남자인가 여자인가에 따라서 부여되는 임무가 달라서다. 그런데 매우 희소한 빈도로 성별이 불분명한 아기가 태어난다. 내시 또는 환관宦官이라는 기형이다.

내시는 불완전한 신체구조로 인해 중국사회에서 만인의 멸시 속에 불행한 삶을 살았다. 한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데 필수불가결한 고환을 갖지 못했다는 신체적 결함 때문이었다. 이런 핸디캡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이 퍼붓는 비난과 멸시를 참고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운이 좋아서 권력을 잡거나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그동안 받은 수모와 학대의 대가로 처참한 역습을 가했다. 내시들의 반격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한다.

중국의 명나라 때 위충현魏忠賢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비천한 신분이라서 배운 것이 없었던 그는 동네 양아치처럼 말썽만 피우고 살았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하나 얻은 뒤 약간의 돈을 수중에 얻게 되자 그럭저럭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도박에 흥미를 가지고 동네 도박판에 끼워들었다가 노름에서 엄청난 금액의 돈을 잃었다. 땀 흘려 마련한 가옥과 전답을 모두 노름빚으로 날려버렸다. 빚쟁이들의 독촉은 날로 거세지고, 그들이 가하는 모욕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빚쟁이들이 주시하는 자리에서 단도를 꺼내 눈을 딱 감고 자신의 고환을 잘라버렸다. 고환이 아직 충분히 발육하지 않은 소년기에 시행하는 거세는 별다른 탈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인이 돼 혈관이 완전히 커졌을 때 거세를 하면 대출혈이나 심각한 감염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절대권력 행사한 내시 위충현

이에 따라 소독과 항생제 사용 등 감염에 대한 의학적 대책이 없던 그 시절 거세는 대단히 위험한 짓이었다. 그런데 위충현은 하늘이 도왔는지 거세 후 별 탈이 나지 않았다.갈 곳이 없어진 그는 궁중으로 들어가서 내시부內侍府에 지원했다. 궁궐로 피신하면 빚쟁이들의 구타와 욕설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위충현은 글을 읽지 못했어도 기억력이 뛰어났다.

그런 재주가 알아본 어떤 환관이 그를 발탁해 출세의 길을 터줬다. 그 후 황손 유모의 눈에 띄어 연인관계가 됐다. 환관은 결혼을 해도 성관계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충현은 성년이 돼 거세한 덕분에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말하는 레즈비언의 테크닉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위충현의 애인, 바로 그 유모가 양육한 아기가 황위를 계승한 것이다. 위충현은 궁중 내시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그런데 이 황제는 궁궐을 건축하는 일에 남다른 취미가 있었다. 대궐 공터에 새 건물을 짓는 작업에 골몰하느라 정치는 내시에게 맡기고 토목공사에만 몰두했다.

위충현은 복수극은 이렇게 시작됐다. 대권을 노리는 역모세력을 끊임없이 적발해 죽였다. 무술이 뛰어난 환관을 모아서 친위부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또한 정보조직을 만들어 자신에게 반대하는 유학파 중신을 형무소에 보냈다. 그곳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내게 한 다음 적당히 죄를 뒤집어씌워 잔혹하게 처형했다. 그를 내시라고 냉소했던 인물을 모두 잡아 처형했음은 물론이다.
 

중국 백성은 황제를 보면 ‘만세萬歲’라고 불렀는데, 황제의 버금가는 권력을 장악한 위충현과 마주치면, ‘9000세九千歲’라고 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없을 것 같은 내시에게 이런 무지무지한 증오심이 숨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