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사러 왔다가 밥솥 들고 간다
[Special 파트3] 아트박스에서 솔로시대 읽다
아트박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십중팔구 ‘문구류’라고 답할 게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아트박스에 가면 문구류는 물론 패션제품, 심지어 전자제품까지 살 수 있다. 싱글족의 증가를 눈여겨본 아트박스가 뼈를 깎는 변신을 추구한 결과다. 이제 아트박스에 가면 ‘솔로 이코노미 시대’가 읽힌다.
올 1월 23일 오후 5시. 2013년도 탁상용 달력을 사기 위해 서울 대학로를 찾았다. 동숭동 일대엔 세련된 디자인의 팬시점이 많다. 아기자기하고 톡톡 튀는 여고생의 감성을 반영한 노트ㆍ다이어리컵ㆍ쿠션이 인기다. 아이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 100m가량 걸었다. 멀리서 흰색 바탕에 빨간색 영문 글씨가 보인다. 아트박스(ART BOX)다.매장 자동문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춰 섰다. 아트박스 쇼윈도에 옷과 가방이 진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박스에서 옷도 파나?” 생각지 못했던 풍경이다. 얼핏 유리문 사이로 생활용품도 보인다. 흥미로웠다. 눈으로 매장을 쓰윽 둘러봤다. 264㎡(80평) 규모의 1층 매장으로 구성된 아트박스는 생기가 넘쳤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싱글족 衣食 책임지는 아트박스
매장 입구에 섰다. 알록달록한 패션 아이템이 눈길을 끈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옷 있는 왼쪽으로 향한다. 노란색ㆍ하늘색 바탕에 동물 캐릭터가 찍힌 후드 티와 맨투맨 티가 눈에 쏙 들어왔다. 편안하고 개성 넘치는 대학가의 젊음을 반영한 듯하다.
옆 코너로 이동했다. ‘Cute Underwear’ 섹션. 여학생 두명이 속옷을 구경하는 중이다. 핑크색 바탕에 흰색 물방울로 포인트를 준 브래지어다. 물결모양의 프릴로 귀여움을 살린 팬티가 귀엽다. 팬시점에서 속옷을 파는데도 색깔이 밝고 환해서 그런지 민망하지 않고 색다르다. 다음은 잡화 코너. 패션가방, 크고 작은 여행용 캐리어와 야유회용 피크닉 가방이 소비자를 유혹한다.
앞쪽 중앙에 놓인 판매대로 이동했다.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 코너다. 기상 후 팔운동을 해야만 알람이 꺼지는 시계와 열쇠를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면 소리로 알려주는 디스펜서가 눈길을 끈다. 기발한 아이디어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유용한 아이템일 것 같다.아기자기한 생활용품도 보인다. 제모기ㆍ보풀제거기다. 이런 것까지 파는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옆에 청소기ㆍ라디오ㆍ가습기ㆍ스피커 등 가전 매장에서나 볼법한 제품이 진열됐다. 하나같이 작고 가볍다. “오!”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아서 자취생에게 안성맞춤일 듯하다.
주방용품도 많았다. 주걱ㆍ국자 같은 간소한 조리기구, 프라이팬ㆍ만능조리기ㆍ오븐기ㆍ밥솥을 판매한다. 사이즈는 모두 ‘미니’다. 대학가 인근에서 자취하는 대학생과 직장인을 겨냥한 주방용품이다. 인근 대학교에서 자취하는 대학원생 전혜주씨는 “예전에는 노트나 다이어리를 사기 위해서 아트박스를 찾았지만 요즘에는 생활용품을 사거나 구경하기 위해서 자주 들른다”고 말했다. 아트박스가 싱글족의 의식衣食을 책임지는 셈이다.
매장 가운데 위치한 판매대엔 팬시용품이 즐비하다. 다이어리ㆍ수첩ㆍ노트ㆍ펜ㆍ스티커 70여 종류가 있다. 이제야 팬시점 아트박스에 온 것 같다. 아트박스 대학로점 매니저는 “최근 포인트 벽지와 화분 등 인테리어 아이템을 갖다놨는데 반응이 좋다”며 “대학가에는 싱글족 문화가 형성돼 있어 솔로를 겨냥한 1인용 아이템이 잘 팔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구경을 마치고 아트박스 매장을 나왔다. 싱글족의 방을 훔쳐본 기분이었다.
싱글족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결혼ㆍ가족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자신만의 삶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증가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중은 1990년 9%에서 2010년 24%로 15%포인트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되고 있다. ‘솔로 이코노미’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싱글족은 기존 1인가구와 성격이 다르다. 무엇보다 경제력이 탄탄하다. 디지털 활용능력도 탁월하다. 쉽게 말해 스스로 선택한 ‘1인 가구’라는 것이다. 학생용 팬시전문점 아트박스는 이런 흐름을 재빨리 읽었다. 2002년 강남역 인근에 라이프스타일 숍 브랜드 ‘Poom’을 오픈했다. 생활용품과 함께 싱글족을 위한 1인용 제품을 구비했다. 구매력이 높은 싱글족을 잡으려는 전략에서였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싱글족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였지만 그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실제로 1인 가구의 비중은 2005년 들어 20%를 넘어섰다. ‘해외수입품을 팔겠다’는 전략도 통하지 않았다. 과세가 붙는 바람에 제품가격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트박스는 1년 만인 2003년 Poom 강남매장을 정리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은 아니었다. 때를 기다렸다. 아트박스는 기존 (아트박스) 매장에 Poom의 제품을 들여놓고 소비자의 반응을 살폈다. 싱글족을 아트박스 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싱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했다. 크기는 줄이되 성능은 유지하는 싱글족의 소비 트렌드를 파악했다. 이진만 아트박스 마케팅팀 이사는 “수년간 싱글족을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2008년부터 아트박스의 콘셉트를 ‘학생의 책상’에서 ‘싱글족의 방’으로 수정했다”며 “주요 매장에서 두달에 한번씩 고객의 위시(wish)리스트를 받아 싱글족을 위한 제품을 출시했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의견을 파악해서 나온 대표적인 상품이 피크닉 가방ㆍ1인용 밥솥이다.
트렌드 읽어 팔색조 변신
싱글족의 방을 콘셉트로 삼은 아트박스의 변신은 작지만 알찬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무엇보다 고객층이 확대되고 있다. 단골고객의 연령이 10대에서 20~30대 초반으로 늘어났다. 매장 성격은 라이프스타일 숍으로 진화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싱글족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제품소진율이 올라갔다. 2012년 아트박스 제품 평균 소진율(PB상품 기준)은 80%가 넘는다. 덩달아 매출도 늘어났다. 아트박스의 매출은 2008년 275억원에서 2011년 444억원으로 61.5% 이상 증가했다.아트박스는 이제 문구점이 아니다. 문구류와 가방에 전자제품까지 파는 라이프스타일숍이다. 이곳을 찾는 고객은 노트만 사지 않는다. 미니 프라이팬이나 1인용 밥솥을 사고, 후드 티와 베개 커버를 구입한다. 싱글족의 등장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아트박스는 팔색조 변신을 꾀하지 못했을 거다. 트렌드를 읽는 눈, 아트박스의 변신 비결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