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ㆍ이억기 회합하니 왜적이 머리 조아리다

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18회

2013-02-01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이억기가 말하길 “배 준비에 바빠서 길이 늦었습니다. 그동안 연전연승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소인이 진작 와서 돕지 못한 것이 죄가 많습니다”하였다. 이억기는 당시 이름이 높은 명장이었다. 이순신ㆍ김시민ㆍ김덕령 등과 더불어 제명하였다. 이억기는 자기보다 순신이 연령도 15세나 더하고 지략도 인격도 두루 보아도 고명정대했다. 순신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하고 숭배하였다.

이날 저녁에 순신은 뱃머리를 돌려 도로 당포 내항의 파도가 잔잔한 곳에 들어와 밤을 지내기로 하였다. 황혼이 지난 때에 근방 산에서 벌목하는 도끼소리가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순신은 곧 제장선에 영을 내려 장병겸1)을 사용하여 배 아래쪽을 물 밑으로 치라고 하였더니 과연 아니나 다를까 배 밑으로부터 사람의 머리와 허리와 팔과 다리가 끊어져 수없이 떠나오고 물빛이 벌겋게 붉어져 적군의 죽음이 많았다. 모두 적의 잠수 수군의 시체였다.

제장들은 이것을 보고 놀라 비로소 순신의 주밀한 생각을 탄복하여 순신의 탄 배 즉 상선에 모여서 그 이유를 듣고자 하였다.

순신은 술과 음식을 나누어 오늘 당포 승전에 대한 제장의 공로를 축하하며 말하기를 “시경에 이르되 ‘벌목정정伐木丁丁이어늘 조명앵앵鳥鳴이로다… 앵기명의其鳴矣라 유구우성猶求友聲이로다’ 2) 하고, 또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에 ‘벌목정정산갱유伐木丁丁山更幽라’ 3) 하였소. 오늘 패전한 적군이 배를 버리고 산에 모여 궁여지책으로 잠수부를 뽑아서 끌과 짝귀로 우리의 배 밑을 뚫어 바다에 침몰시킬 계획을 수행코자 함이나 이러한 난시에 누가 있어 날이 저물도록 벌목하겠소? 이는 정녕코 ‘짝이 되는 소리’를 구함이니 즉 쉽게 말하면 벌목하는 소리를 응하여 선상에 있는 사람이 모르게 배 밑을 뚫자는 것이었소” 하였다.

제장들은 그제야 깨닫고 감복하여 “사또는 성인이 아니면 신인이시오!” 하였다. 후인이 시를 지어 찬하였다.

황혼이 지난 뒤에 순신은 당포에서는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없다 하여 곧 행선을 재촉하여 순풍에 돛을 달아 진주 지방인 창선도 앞바다에 왔다. 진을 치고 밤을 지내더니 한밤중이나 되어서 군중이 크게 요란하였다.

항오가 엄숙지 못한 원균의 배에서 또 적의 잠수 수군이 습격한다고 야경을 일으켜 각선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순신의 기함은 적연부동하였다. 얼마 후 정운 어영담 등 제장선에서 영을 내려 방울을 올려서 족히 놀랄 것이 없다는 경계로써 이 헛소동을 진압하였다. 이튿날 새벽녘에 배를 띄워 추도4) 근방에 이르러 두루 수색하였으나 어제의 적선이 그림자도 없었다.

이날 밤을 고성 땅 고등포5)에서 쉬고 6월 4일[혹은 3일] 이른 아침에 사천 서쪽에는 적선이 없는 것을 안 연후에 다시 당포 앞바다에 이르러 소선을 내놓아 적선의 유무를 정찰하더니 사시쯤 되어서 웬 사람인지 하나가 산으로부터 뛰어내려와 순신의 주사를 보고 고하되 “그저께 접전한 뒤에 살아남은 적군이 죽은 저의 군사의 목을 베어 한 무더기로 모아 쌓고 불을 질러 태워버리고 울며 육지로 달아났소. 달아날 때에 우리 사람을 만나도 죽일 뜻은 없고 길에서도 통곡하며 달아났소” 하며 또 여러 말이 있었다.

“그날 석양 무렵에 구원하려 오던 적선 50~60척은 어디로 갔다더냐?” 하는 순신의 질문에 그는 대답하되 “구원오던 적선은 당포싸움에 저의 편이 전멸된 것을 보고는 당포 포구 밖에서 쫓겨서 그 밤중에 도로 거제로 달아나 버렸소” 하였다. 이 사람의 성명은 강탁姜卓이었다.

순신은 곧 거제로 가서 당포에서 달아난 적의 함대를 치고 가덕과 부산의 적을 소탕하고 싶으나 오겠다고 한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주사가 아직도 오지를 아니하니 자기 혼자의 병력으로는 너무도 형세가 약하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순신은 왼편 어깨에 총 맞은 자리가 여름철이 되어서 용이하게 낫지를 않아 고통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웅심은 적이 있는 곳을 알고는 뒤로 물러갈 수는 없다. 순신은 제장을 불러서 거제로 행선할 뜻을 말하고 이번 길에는 적의 소굴이 되는 부산의 본거를 소탕할 터이니 제공은 각기 힘을 다하라고 약속을 거듭 밝혔다.

제장들도 매번 승첩하는 싸움에 자신감이 생겼으며 또 주장인 이순신의 신묘한 지혜와 웅장한 용기에 태산같은 신뢰심이 굳어서 앞을 다투어 뛰어 나아갈 것과 죽을힘을 다하여 싸울 것을 서약하였다. 이때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이억기가 거느린 대맹선 25척이 중소선 50여 척을 이끌고 위무당당하게 오는 것이 멀리 서쪽 바다에 보였다.6)

순신과 억기 힘 합치다

우도의 주사를 보고 순신의 좌도 주사 제장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불과 23척의 작은 주사로 날마다 싸움에 피곤한 이때에 우도 주사가 오는 것은 비길 데 없는 기쁨이었다. 우도 함대는 순풍에 돛을 달고 달려왔다. 순신이 몸소 뱃머리에 나서서 이억기를 환영하였다.

순신은 이억기의 손을 잡으며 “영감, 먼 길에 노고는 어떠하오. 왜 이렇게 늦었소. 이때가 어떤 때요” 하였다.

이억기는 늦게 온 것을 유감의 뜻을 표하여 “배 준비에 바빠서 길이 늦었습니다. 그동안에 연전연승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소인이 진작 와서 돕지 못한 것이 죄가 많습니다” 하였다.

이억기는 당시에 이름이 높은 명장으로 이순신ㆍ김시민ㆍ김덕령 등으로 더불어 제명하였다. 이억기는 자기보다 순신이 연령도 15세 이상이나 더하고 지략도 인격도 두루 보아도 고명정대했다. 순신을 마음으로 깊이 존경하고도 숭배하였다. 더구나 지난 4월 이래로 적군이 국내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로는 우리나라의 수륙 대소 제장이 싸우기도 전에 다투어 달아나는 이때, 오직 이순신 한사람이 얼마 안되는 주사를 가지고 과감하게도 타도에까지 출병하여 적의 함대를 맞아 싸워서 연전연승하여, 그 강하다는 일본군으로도 전라도에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또 그 전과로 인연하여 충청도 이북 바다에는 아직 적선의 그림자도 보이지를 못하게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이억기는 더욱 순신을 고맙게 여겼다.

이순신의 주사 24척과 이억기의 주사 25척과 원균의 주사 5척과 합 전라좌우도와 경상우도를 아울러 삼도연합함대 판옥대맹선 50여척이 예기충천하게 당포 앞바다를 떠나 행선하여 착량7) 포구에 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순신은 이억기로 더불어 맹세코 적군을 소탕할 것을 약속하고 이억기는 기쁘게 순신의 지휘를 받기를 달가워하고 또 자청하였다.

이억기는 종실 심주군沁州君의 아들로 금지옥엽이며 당대 명장으로 신립 이순신 등과 이름이 나란하여 성망이 높았던 터이다. 재상 나암懶庵 정언신의 추천으로 온성穩城부사가 되어 호적胡賊을 격파하고 대신 정철의 추천으로 이순신과 동시에 수군대장이 된 인걸이었다. 이 두 영웅이 처음 만났지만 오래된 친구 같이 한마음으로 힘껏 싸워 왕실을 돕기로 서로 결탁하였다. 아깝다, 원균이여! 어찌 같이 지내지 못하였는가?

이튿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지척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순신이 소선을 내놓아 적의 기미를 염탐하더니 저녁 때 이르러 안개가 걷혔다. “전일 당포 바다에서 도주한 적선이 거제로 와 있다가 고성 당항포8)로 갔소” 하고 어민 김모金毛라는 사람이 와서 고한다. 순신은 이 백성들이 자기를 기다려서 적의 행동을 가르쳐 주는 것이 그 성심을 다할 뿐 아니라 순신의 주사를 보고 잃었던 부모를 만나는 듯이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되어 “적의 칼에 어육이 되는 이 백성을 살려야지” 하고 순신은 제장과 더불어 결심하였다.

순신은 전 함대를 지휘하여 견내량9)목을 지나 당항포 앞바다에 다다라 진해 쪽을 바라보니 진해읍 성 밖 평야에 갑옷 입고 말 탄 군사 1000여명이 기를 꽂고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신은 탐정을 보내어 알아오라고 하였더니 탐문하고 돌아와 고하되 함안군수 유숭인이 기병하여 기마병 1100명을 거느리고 적군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 순신은 수륙으로 협공할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할 수는 있으나 유숭인의 용병지재를 근심하였다.

적의 층각대장선에 칼 꽂다

순신은 또 전선 3척을 보내어 당항포의 산천 지리를 살피고 오라 하고 만일에 적선이 따르거든 결코 응전하지 말고 거짓 달아날 것을 엄히 당부하고 다른 배들은 산 구비에 숨어서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윽고 아까 보냈던 배가 포구 밖으로 달아나오며 신기포를 놓아 보변한다.

순신은 곧 병선 3척을 두어 포구에 복병케 한 뒤에 전 함대를 재촉하여 당항포를 향하여 들어가는데 자기의 주사는 선봉이 되고 다음에 이억기 그 다음에 원균의 주사가 다 순신의 지휘를 받아 각각 양편으로 벌려 서서 들어가는데 산이 강을 끼고 달리기 20여 리나 하였는데 그 사이가 지형이 과히 좁지를 아니하여 싸울 만하다고 순신은 예측하였다. 이 사이로 40여척의 전선이 서로 꼬리를 물고 들어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을 이루었다. 순신의 함대가 소소강10) 어구에 다다르니 검은 칠을 한 적선이 그 크기가 조선 판옥대맹선만한데 그런 대선이 9척이요 중선이 4척 소선이 13척인데 강 언덕에 가깝게 닻을 내리고 늘어섰다. 그 중에 제일 큰 배 한 척에는 뱃머리에 삼층 누각을 세우고 단청을 찬란하게 하였다.

사방 벽에는 분을 발라서 마치 불각신궁佛閣神宮과 방불하며 앞에는 청색 덮개를 세우고, 누각 밑은 검은 물들인 흑색 장막을 두르고, 장막에는 백색 꽃무늬를 그리고, 장막 안에는 시위하는 제장들 여럿이 무기를 들고 늘어섰다. 또 이밖에도 적의 대선 4척이 포구 안으로부터 나와서 합세하여 한곳에 모여 선다. 배마다 검은 기를 꽂았는데 흰 글자로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일곱 자를 썼다. 배는 도합 30여척이었다. 적선들은 이 편 함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매 적은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조총을 놓아 탄환의 우박이 쏟아지는 듯하여 이편 병선에 와 떨어졌다.

순신은 하령하여 모든 배들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였던 철방패를 내세워 탄환의 비를 가리고 적의 함대를 에워싸게 한 뒤에 거북선을 놓아 적선 중으로 뚫고 돌입하게 하여 천ㆍ지ㆍ현자 각양 대포를 쏘아 먼저 그 층각대선을 깨뜨리라고 명하였다. 다른 전선들도 번갈아 들고 나고 하여서 각종 대포와 화전과 장편전을 쏘아 화살과 탄환이 바람과 우레같이 맹공격을 개시하였다. 적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싸움이 한창 어우러졌을 때를 타서 순신은 제장에게 명을 내려 “적이 싸우다가 힘이 다하면 종국에는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 도망할 염려가 있다. 그리 된다면 적의 병력을 많이 섬멸치 못하게 될 것이니 우리는 거짓 퇴각하는 모습을 보여 에워싼 것을 풀고 패하여 달아나는 모양으로 큰 바다로 나가면 적은 승세를 타서 정녕코 우리 뒤를 추격하여 따라 나올 것이니 그때에 우리는 전후좌우로 협격하여 전멸케 하라” 하고 에워싼 것을 한편을 열고 퇴각하여 달아났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순신의 예상한 대로 적의 층각대장선이 검은 돛을 쌍 돛대에 높이 달고 여러 층각선의 호위를 받으며 모든 적선들이 좌우로 늘어서서 따라 나온다.

그 배가 중류에 나설 만한 때에 순신은 영을 내려 다시 적의 함대를 사방으로 돌려 포위하게 하고 풍우같이 각종 무기를 일제히 쏘아 총공격을 시작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으로 하여금 바로 그 삼층각 대장선을 엄습하라는 지휘를 하였다. 장령을 받은 거북선은 적의 대소 제선을 받아 헤치고 바로 삼층각선 곁으로 바짝 달려들어 용의 머리를 번쩍 들고 우러러 삼층각을 목표로 하여 대장군전을 쏘아 맞히니 삼층각이 명중되어 왈칵 깨졌다. 이러는 때 각선에서도 대포와 화전을 방사하여 층각선의 검은 장막과 돛을 맞혀서 장막과 돛에 불이 일어나 화광이 하늘에 닿은 듯하다. 그리고 대포 소리는 굉굉하여 산악이 진동하였다. 그래도 적장은 칼을 잡고 독전하다가 마침내 순신의 화살을 맞아 부서진 층각 터에서 떨어졌다.

순신의 묘수에 걸려든 적군

층각선의 누각이 깨지는 동시에 기타 누각선의 다락집도 다 깨지고 불이 붙고 하여 버렸다. 적장이 살을 맞아 죽어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그중 남은 적선 4척이 창황한 중에 틈을 타서 돛을 달고 달아나려 하였다.

순신은 이억기로 더불어 제장선 약간만을 거느리고 달아나는 적선을 추격하여 에워싸고 활과 포로써 급히 치니 적은 견디지 못하여 혹은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육지로 나가려 하고 혹은 큰 배를 버리고 작은 배에 내려서 노를 저어 달아나 산으로 기어올라 달아나며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였다. 때마침 가랑비가 내린다. 이편 장사들은 혹은 창을 혹은 장검을 혹은 활을 끼고 적병을 따라가 혹은 물에서 혹은 밭에서 혹은 산록에서 둘씩 셋씩 단병전을 하여서 적병의 머리 43급을 베어들고 각기 본진의 부대로 돌아왔다.

순신은 적선을 전부 불사르고 오직 배 1 척만을 남겨두어 상륙 망명하였던 적병이 물길로 도망할 편리를 주게 하고 군을 거두니 벌써 날이 저물었다.11)

이 당항포의 외양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여명에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 순신의 장령을 받아가지고 자기의 부하에 속한 병선만을 인솔하고 다시 당항포 어구에 남겨둔 적선 한 척에 적의 패잔병이 탔나 아니 탔나를 보려고 갔다. 이순신李純信의 병선 3척이 당항포 어구에 다다르니 아니나 다를까 적선 1척에 일본군을 가득 싣고 포구로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다. 전날 패전하여 도망가서 숨었던 적병들이 이편 이순신의 추측한 바와 같이 하룻밤 동안에 수백명이 모여 남겨 놓은 배를 잡아타고 부산방면으로 도망하려 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참으로 솥 안의 물고기 신세였다.

중위장 이순신李純信이 산그늘 속에서 쑥 나서서 불의에 길을 막고 지ㆍ현자 대포와 불랑기를 놓아 아직도 어두운 당항포의 새벽을 흔들었다. 의외의 포성을 들은 적은 낭패하여 뱃머리를 동쪽으로 향하고 달아나려 하였으나 동쪽에서 또 이편 병선이 내달으며 편전 유엽전 철환 질려포 대발화 등 여러 무기를 쏘고 던지고 하였다.

질려포는 현세에 사용하는 수류탄과 같은 폭발탄이니 그 탄환은 능철 일명 철질려를 넣은 것이고 대발화라는 것은 속명 아단단지라는 무기이니 지금의 소이탄과 같은 것이다. 그 당시에 이공이 유명한 화포 제작공과 연구 상의하여 새로 발명하여 낸 것이다. 다 충무전서에 이들 무기가 기록되어 있다.

적선은 좌우로 협격을 받으매 부득불 대항하여 싸웠다. 이편의 공격이 맹렬하여 다수한 사상자가 났다. 적군은 도저히 견디지 못하여 죽자 살자 달아난다. 순신은 군사를 지휘하여 쇠갈고리를 던져 적선을 못 가게 하였다. 적선은 쇠갈고리를 벗으려고 만가지로 애를 썼으나 아무리 하여도 벗을 길이 없어 바다로 끌려 나갔다. 그래서 선중에 있던 적은 반나마 죽고 반나마 물에 빠져 죽고 하여버렸다.

싸움 끝난 뒤 적선 불살라

그중에 24, 25세나 되는 적장 하나가 부하 8명의 장수를 데리고 끝까지 장렬히 항전한다. 그는 키가 크고 얼굴이 준수하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장검을 짚고 우뚝 섰다. 이편에서 그 장수를 향하여 활을 쏘아 살을 7, 8개나 맞아서 전신이 핏빛이 되었으나 그대로 태연히 독전한다. 연방 죽어가는 부하들도 죽기까지 그 명령을 복종하여 싸웠다. 그러나 마침내 화살 10여개를 맞고 그 장수가 분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한 소리를 지르고 물에 떨어졌다.

순신은 곧 그 배에 뛰어올라 그 장수의 수급을 베었다. 살아남았던 적병은 군관 김성옥金成玉 등의 날랜 칼에 다 죽어버리고 말았다. 싸움이 다 끝난 뒤에 적선을 불살라 버렸다.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