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고집하면 내수경기 망친다

정영주의 쓴소리 바른소리

2013-01-31     정영주 더스쿠프 회장

 미국ㆍ일본ㆍ유럽 등 선진국과 중국의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데서 나타나는 기대감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경기를 희생하는 대가를 지불하면서 수출경기를 되살리는 고환율 정책은 매우 잘못됐다.

국내 경제 정책을 주관하는 경제수장은 경기를 전망할 때 들먹이는 상투어가 있다. 미국ㆍ일본ㆍ유럽 그리고 중국의 경기회복이다. 국내경기를 수출경기와 내수경기로 나눌 때 내수경기는 고려대상도 안 된다.

이미 침체될 대로 침체돼서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을 만큼 깊은 수렁에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수출경기의 종속변수라고 판단한다. 수출경기가 살아나야 내수경기도 살아난다는 논리다.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맞다. 내수경기가 수출경기를 이끌 수도 있어서다. 국내시장에서 경쟁력 높고 잘 팔리는 제품은 해외시장에 진출해서도 잘 팔릴 가능성이 높다. 수출경기의 호황을 가져올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이러한 수출과 수출경기가 정상적 경제발전 과정의 수출이다.

선진국 자본주의는 균형성장론적인 궤적을 밟아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1970년대 말까지 수출주도형 경제구조가 굳어졌다. 내수경기는 수출경기에 항상 후행했다. 개발독재시대가 끝난 1980년대 후반 들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불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내수경기 진작이라는 정책 구호를 내세운 적이 있다. 하지만 선거 때나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서 나오는 선전문구에 불과했다.

실제 정책으로 실행된 적은 거의 없다. 반대로 내수억제 시책은 흔들림 없이 지속됐다. 1월 22일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들과 가진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세계경제가 위기에서 한발짝 벗어났다”며 “올해는 서로 협조하면서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김 총재는 1월 11일에도 “경제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다.

수출에도 부가세 징수해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경기회복이라고 볼 수 있는 긍정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제 금융시장은 재정절벽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고 유로존 우려가 완화되는 등 안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경제수장이 말하는 경기회복 논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수출경기 선행론이다.

필자는 이들이 미국ㆍ일본ㆍ유럽 등 선진국과 중국의 경기회복을 전망하는 데서 나타나는 기대감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의 말처럼 수출경기가 회복돼야 국내경기가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출경기 회복을 위해 펼치는 정책은 매우 잘못됐다. 국내경기를 희생하면서 왜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수출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펴는 고환율 정책은 수출재벌을 육성하는 정책으로 사용되고 있다. 고환율 정책은 논리적으로도 경기대책으로 볼 수 없다. 수입업자의 부富를 수출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이전하는 것과 다름없다. 실체는 내수경기를 억누르는 정책인 것이다.

일방적으로 수출재벌에게 서민의 부를 이전하는 정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노골적인 양극화다. 다른 맥락에서 보면 수출품의 거래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징수하지 않는 것도 고환율 정책과 마찬가지로 수출재벌 육성정책이다.

일본이나 유럽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제로금리의 국가다. 무제한의 양적안화(QE)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다. 디플레이션(Deflati on) 불황으로 극심한 침체에 빠져 있는 일본은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엔화 가치를 낮추는 양적완화에 나서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ㆍ일본ㆍ유럽 모두 자국통화를 무제한으로 세계시장에 풀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치가 떨어지는 이들의 외화 시세를 떠받치고 있다. 과연 옳은 정책인지 묻고 싶다. 밀려드는 외화를 저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서 외환을 사들이는 고환율 정책 말고 원화의 가치를 낮추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창의적인 수출경기 진작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