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포식자’사회惡기업 속출
사회적기업 약인가 독인가
2013-01-15 김정덕 기자
기초생활수급자로 취약계층에 속하는 김상진(52•가명)씨. 아파트 단지를 돌며 수입한 재활용 폐지를 팔아 근근이 생활하던 그는 1년 전 폐지재활용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회적기업에 취직했다.
폐지가격에 따라 월 수입이 오르내려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던 그에게 회사 사장은 고정적인 기본급을 약속했다. 기회였다. “정부가 인건비 등 금전적 지원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라고 하니 임금 떼일 일은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몇달 후 사장은 생각했던 것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약속했던 액수의 임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임금은 차일피일 밀렸다. 나중에 보니 임금이 밀린 사람은 김씨만이 아니었다. 직원들은 고용노동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 기업은 여전히 사회적기업 간판을 달고 사업을 하고 있다. 직원들의 임금을 토해냈을 뿐 바뀐 게 전혀 없다. 김씨는 말했다. “사회적기업은 노동자가 아니라 CEO를 위해 만든 것 같다.”
지원금 부정수급해도 환수에 그쳐
개념부터 정립하자. 사회적기업이란 공익에 부합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영리활동을 하고, 정부가 인증한다.
현재까지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은 774개다. 예비사회적기업까지 포함하면 1800개에 달한다. 공익을 위한 사회적기업이 탄생했으니, 취약계층의 삶이 조금은 밝아졌을 게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기업 지원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인증하고 금전적 지원까지 하는 사회적기업이 부정의 늪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기업을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약한 게 첫째 이유다. 사례를 보자. 2009년부터 상습적으로 임금을 주지 않아 사법처리를 받은 사회적기업 A사. 이 회사는 여전히 사회적 기업 인증이 취소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서울시•사회적 기업을 관리하는 구청 관계자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원을 해줘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많아 임금체불은 있을 수 있다. 정부 지원금을 다른 곳에 사용해 문제가 됐다면 몰라도 단순히 임금체불건만으로 인증을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임금체불은 사회적기업 인증 취소사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제제조치를 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시가 2010년 2월~2011년 2월 지정한 서울형 사회적기업(221곳)의 25%가 정부지원금 부정수급•횡령•최저임금법 위반•장애인노동자 통장 임의관리 등을 이유로 적발됐다. 하지만 이 기업들은 지원금 환수조치와 함께 주의•경고만 받았을 뿐 인증은 취소되지 않았다. 불법•부당행위를 일삼다 적발돼도 지원금을 내뱉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사업자들에게 깔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정부지원금이 적은 것도 아니다. 사회적기업에 들어가는 인건비만 해도 연간 1000억원에 이른다. 사업개발비는 2012년 기준 175억원이다.
솜방망이 처벌 사회적기업 왜곡시켜
사회적기업에 대한 사후관리시스템이 미비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무엇보다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진흥원 소관인 인증절차가 문제다. 김순양 영남대(행정학) 교수는 “인증은 서류심사부터 시작되는데, 이 서류에 거짓 데이터를 넣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그런데 일부 담당자들은 전화 한통만 해봐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조차 검토하지 않고 서류검토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증서류를 훑어보니 어떤 사회적 기업은 전화번호가 허위로 기재돼 있었고, 실체 또한 확실하지 않았다”며 “왜 이렇게 하느냐고 따져 물으면 공무원들은 인력부족 핑계만 댄다”고 꼬집었다.
감독체계가 확실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서울시에 속한 사회적기업에게 전달된 지원금에 문제가 생겨도 제재조치를 취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법적으론 규정돼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현장에선 그렇다. 취재 당시 있었던 일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보겠다. 먼저 서울시에 물었다.
✚ 기자 : 사회적기업 지원금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어디인가.
✚ 서울시 :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진흥원이나 고용센터다. 우린 지원만 한다.
✚ 기자 : 지원금을 나눠주는 곳에서 관리하고 감독하는 거 아닌가.
✚서울시 : 어쨌든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중간에서 돈만 전달한다.
고용노동부에 같은 질문을 했다.
✚ 고용노동부 : 지자체인 서울시다. 우린 돈만 준다. 집행하는 기관에서 할 일이다.
✚ 기자 :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에 지원금을 줄 뿐이라더라.
✚ 서울시 : 지원금은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8대2로 부담한다. 당연히 8을 내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센터다.
✚ 기자 : 서울시는 분명히 고용노동부란다.
✚ 고용노동부 : 서울시에서 뭔가 착각하는 것 같다.
✚ 기자 :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서울시는 절대 아니란다. 규정집을 보내왔다.
✚ 고용노동부 : 규정집에... 보니까 분명히 돈을 집행하는 지자체다.
✚ 기자 : 그럼 혹시 자치구를 말하는 건가.
✚ 고용노동부 : 그런 거 같다. 구청인 것 같다.
이번엔 구청에 확인했다.
✚ 기자 : 사회적기업 지원금을 최종 집행하고 관리•감독까지 하나.
✚ 관할구청 : 그렇다.
✚ 기자 : (한참 후) 사회적기업이 규정을 어기면 인증을 취소하는 권한도 있나.
✚ 구청 : 그건 고용노동부 산하의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담당한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결국 관할구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서울시•고용노동부에 사회적기업 담당자가 있음에도 거의 한나절 동안 핑퐁게임을 했다는 거다. 규정을 어긴 사회적기업이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적 기업을 관리하는 주체가 불분명한 이유는 지원금 부담률이 정부 80%, 지방자치단체 20%라서다. 서울시의 예를 들면 고용부가 지원금을 서울시에 보내면, 서울시는 다시 각 가치구에 배정한다. 지원금을 최종 집행하는 곳은 자치구다.
감시•감독시스템부터 구축해야
여기까진 빙산의 일각이다.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사회적기업의 감독은 지원금을 최종 집행하는 담당자가 한다. 담당자 재량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원금은 전액 현금으로 계좌이체를 통해 사업자에게 입금된다. 사업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견물생심이란 말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이런 이유로 사회적기업 지원제도의 근본 취지를 잘못 설정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인 ‘아름다운 가게’ 김광민 팀장은 “정부는 사회적기업을 일자리창출 정책의 하나로 인식하는데 그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임금을 지원하는 게 중심이니까 부정이 생기고, 자립력이 없는 기업은 무너지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며 “일자리 창출의 개념으로 인건비를 지원할 게 아니라 상품개발이나 마케팅•컨설팅 등 전문능력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익성은 사회적기업이 갖춰야 할 필수요건이다. 사회적기업연구원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적기업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인증하고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익에 부합하는 사업을 제대로 정착하도록 돕는 게 정부가 사회적기업제도를 도입한 원래 취지다.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감시감독체제가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 ‘인증만 해주고 돈만 주면 그만’이라는 인식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