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감정 ‘해학’으로 승화하다

김상일의 Art Talk | 조각가 김성복

2013-01-04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 새로운 마음가짐과 소망으로 한해를 맞이할 때다. 소원하니까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전래동화나 설화를 들으면서 이야기 속 주인공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만 가상 이야기에 매료돼 현실과 착각한 탓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깨비에 얽힌 이야기다.

 

진지함 대신 가볍게 ‘가벼움의 미학’

현대 시각으로 보면 조각가 김성복의 작품은 긍정과 부정이 함께 공존한다. 젊은 시절 강인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면 불가능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머리를 쓸 줄 모른다고 힐난한다. 미련하고 우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의 생각은 다르다. 이것을 미련을 넘어 우직함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성복의 조각은 현대적 매끄러움이나 세련미와는 대조를 이룬다. 거친 터치로 투박하게 표현해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오는 동안 느낀 강인한 인상과 표정, 몸짓을 잊지 않는다.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낸다. 그가 만든 조각상을 보자.

굳건한 자세로 거친 현실과 맞서는 듯하다. 마치 초인처럼 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강인함 뒤에는 낙관적이고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작가의 작품이 이중성을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중성은 작품에 투영된다. 1990년대 말 제작한 ‘불확실한 위안’ 연작과 2000년경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바람이 불어도 가야 한다’ 연작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작가의 작품에 변화가 보인다. 불안한 감정을 해학으로 처리한다. 이를테면 신화적인 동물 해태나 용의 형상을 유쾌하게 표현한다. 작가의 조형언어, 해학으로 풀어낸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전통적인 동물형상이다. 캐릭터에 도깨비 방망이를 접목한 것은 모든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라는 의미다. 이렇듯 작가는 삶이 던져주는 진지함을 내려놓는다. 대신 가벼움으로 처리한다. 가벼움의 미학이다. 재료와 표현 사이에도 메시지가 있다. 돌이라는 무거운 재료로 무거운 삶의 메시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가는 석재石材를 가지고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을 표현한다. 작가의 해학적인 영감의 대상은 도깨비 방망이다. 도깨비 방망이는 인간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을 성취해 줄 수 있다. 반대로 벌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물건인 셈이다.

 

 

맥없는 일상에 유머 던져

사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무척 많다. 현실에서 가지지 못한 돈ㆍ권력ㆍ음식ㆍ집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자연이나 동물의 모양과 생김새를 가지고 도깨비 방망이를 만든다. 모두 유머와 해학을 담고 있다.

조각가 김성복은 발상을 전환한다. 일상의 삶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무거운 짐을 유쾌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작가의 무의식에 남아있는 기억이나 숨은 욕구를 밖으로 표출한다. 일상은 반복적이고 사소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과 행동을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민간신앙, 다시 말해 전통의 일상에서 생생하게 남아있는 설화와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것은 생명력의 재탄생을 예고한다.

작가는 전통에서 지혜를 얻는다. 칼날처럼 번득이는 네 개의 눈이나 남근처럼 꼿꼿하게 서있는 꼬리의 모습으로 원시적인 생명력을 표현한다. 작가는 이렇게 맥없는 일상에 자신의 조형성과 신화적 형상을 남기고 있다.

01 신화
분홍대리석, 230x300x630㎜, 2011

02 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분홍대리석, 600x250x350㎜, 2011

03 신화
브론즈, 500x190x580㎜, 2011

전시회 소식

 

 

김현정展 - 달 없는 밤
파주출판도시 복합문화예술공간 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에서 김현정의 ‘달 없는 밤’展이 내년 1월 4일부터 2월 3일까지 열린다. 풍경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온 작가 김현정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작품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일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김현정의 풍경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순간의 풍경과 함께했던 기억과 감정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다. 아울러 작가가 풍경을 통해 찾아가는 감정과 기억의 과정이다. 전시회를 통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展
갤러리 정미소는 소멸돼 가는 것에 대해 전시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찬Ⅰ’展을 12월 31일부터 2013년 2월 7일까지 개최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속도는 빨라지고 시각적인 기계가 대거 등장했다. 공간을 초월한 시각의 힘은 점점 강화됐다. 이런 이유로 실제적인 시각이미지 장소가 소멸됐다. 소멸과 더불어 영원할 것 같았던 매체기술 저장고가 탄생했다. 김주리ㆍ목정욱ㆍ신건우ㆍ신기운ㆍ정재욱 작가 5명은 이번 전시에서 축소되고, 소멸되고, 사라지는 것이 영원으로 가는 통로를 제시한다.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 human3k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