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없는 첫 정부 북 치고 장구도 쳐야
제1 참모 없는 박근혜 당선인
‘너무 튀어서도, 너무 숨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퍼스트레이디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영부인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이 있다. 과도한 업무에 허덕이는 대통령을 보필하고, 권력의 정점에 고립된 통치권자에게 생생한 여론을 전달하는 것이다. 주변의 사탕발림으로부터 친인척을 관리하는 것은 영부인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대통령에 대한 영부인의 영향력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때론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국내 첫 여성 대통령이다. 당연히 영부인이 없다. 나라의 안살림을 챙겨야 하는 이가 없다는 건 어쩌면 여성 대통령인 박 당선인에게 부담일 수 있다. 물론 영부인을 중심으로 측근비리가 형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대통령에게 생생한 여론 전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4년 동안 10명의 대통령과 영부인이 배출됐다. 청와대 안주인의 내조 스타일은 크게 두가지다. 사각지대를 보듬는 ‘국민 어머니’와 시대흐름을 읽는 ‘대통령 조언자’다. 1993년 문민정부를 기점으로 등장한 영부인의 내조 스타일은 각각 다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국민호감형,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업적형,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여성 지도자형,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활동내조형으로 분류된다. 정치인의 아내에서 영부인으로 변신한 이들은 어떤 청와대 안주인이었을까.
손명순 여사는 ‘한발 뒤로 물러난 현모양처’형이다. 오랫동안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한 YS를 조용하게 보필했다는 평이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남편이 어려울 땐 적극 나섰다. 특히 YS의 주변 사람을 꼼꼼하게 관리했다. YS는 성격상 정적이 많은 편이었는데, 이들이 섭섭함을 느끼지 않도록 다독였다. 일화가 있다. 1990년 3당 합당 때 최형우 의원(당시)이 YS를 따라가지 않겠다며 버티자 손 여사가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결국 최 의원은 YS쪽에 합류했다. 손 여사의 사람 관리는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진가를 발휘했다. 그녀는 민정계 인사들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남편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많은 사람이 YS를 지지했다.
청와대에 들어와서도 주변 사람을 챙겼다. 청와대 내 수행원과 운전기사는 식사 때를 놓치는 일이 많았다. 손 여사는 옛날 본관 건물을 개조해 구내식당을 만들어 언제든 식사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청와대에 여직원 전용 휴게실을 만든 것도 손 여사였다.
YS의 국정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청와대 안주인이 나서야 할 땐 확실하게 행동했다. 그중 단독 해외 순방은 일대의 사건으로 평가된다. 손 여사는 1995년 9월 3일 중국 정부의 특별 초청을 받고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UN 주관으로 열리는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기조연설을 했다.여성 비서관 1급을 둔 일도 청와대에서 회자된다. 손 여사는 대통령에게 여성문제 등을 보고할 수 있도록 대통령 비서실에 여성 비서관 1급을 뒀다.
손 여사는 주변 사람을 잘 챙기고 공사를 철저하게 구분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사람 관리에 능했던 손 여사도 주변 인사의 로비로부터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 YS의 차남 현철씨는 매주 청와대에 들어올 정도로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현철씨 주변에 불나방 같은 인사들이 득실댔다. 1997년 한보비리사건이 터지면서 현철씨는 구속됐다. 손 여사는 남편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구속되는 상황을 맞았다. 손 여사는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손 여사의 뒤를 이어 청와대 안방을 차지한 사람은 이희호 여사다. 이 여사는 76세로 청와대에 입성한 역대 최고령 퍼스트레이디다. 하지만 활발한 햇볕 내조로 과거 영부인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청와대 여성 정책 비서관을 지낸 이상덕 한국폴리텍1대학 학장은 남녀차별 금지법을 발의했다. 역풍이 만만치 않자 윤후정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이 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여사는 국민회의 총재였던 한화갑씨를 설득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도왔다.
활동가형 영부인 이희호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 이 여사는 여성부 신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여사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1998년 결식아동을 돕는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을 발족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여사는 이 법인의 명예회장을 맡았다. 사랑의 친구들이 자리를 잡은 이후 1999년 한국여성재단을 설립했다.
이 여사는 해외 순방에도 적극적이었다. 손 여사의 베이징 여성대회 참석이 단발로 끝났다면 이 여사는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5차례 해외를 순방했다. 2002년 5월에는 역대 퍼스트레이디 중 최초로 DJ를 대신해 UN 아동특별총회에 참석해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기조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 여사 역시 아들의 이권 개입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 DJ의 3남 홍걸씨는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5년 전의 불행이 되풀이된 순간이었다.
이 여사는 본인이 로비사건에 연루되는 불명예도 안았다. 1999년 옷 로비 게이트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국민의 정부 체면을 구겼다.
여론 전달에도 적극적이었다. 권 여사는 여성 의원이나 초선 의원을 집무실이나 관저에서 만나면 여론의 흐름을 물었다. ‘뉴스 마니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권 여사는 신문을 꼼꼼히 읽고 노 전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달하기도 했다.
뉴스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권 여사는 2005년 3월 혁신사업을 비판한 신문칼럼을 오려 노 전 대통령의 책상에 올려놔 노 전 대통령이 전국 공무원에 전자우편을 보내는 데 도움을 줬다.
권 여사는 정치에 소극적이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참여형 영부인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는 조용한 청와대 만들기가 목표였다. 하지만 참여정부 후반기부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명예위원장을 맡는 등 대외활동의 보폭을 넓혔다.
여성의 자아실현과 유아보육•교육 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서점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을 정도로 책을 좋아하는 권 여사는 작은 도서관 사업에도 나섰다. 권 여사는 도서관 개관식 때나 대규모 도서전에 직접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반대로 권 여사의 청와대 생활은 소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가 평소 감자•고구마•옥수수를 간식으로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는 청와대에서 유명하다. 여름에는 무•당근•오이를 길게 썰어 놓고 수시로 먹었다. 권 여사는 가끔 오찬으로 보좌진이 사온 떡볶이•어묵•김밥•치킨 등으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기도 했다.
2002년 4월 노 전 대통령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권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 되면 친인척 관리는 철저히 책임지고 챙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로비 유혹을 차단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형님 건평씨는 2007년 세종증권 매각 비리 혐의로 구속됐다. 권 여사도 로비 혐의를 받았다. 청와대 안주인으로 있으면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윤옥, 시청 간부급 부인모임 주도
김윤옥 여사는 앞에 나서지 않지만 할 말은 하는 거침없는 성격으로 알려진다. 칼칼한 목소리와 진한 사투리 때문에 ‘천생 경상도 여자’라는 말을 듣는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MB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김 여사는 서울시장 부인으로 있을 때 시청 간부급 직원 부인의 모임을 주도했다. 모임에서는 봉사활동에 집중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입성한 이후에도 활발한 대외활동을 보였다. 대표적인 게 한식 세계화 운동이다. 한식세계화추진단의 명예회장을 맡은 김 여사는 2010년 11월에는 한식요리책 「김윤옥의 한식 이야기」를 펴냈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CNN 방송에 출연해 한식 조리법을 선보였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지난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에 오•만찬 메뉴를 직접 고르며 내조 외교를 펼치기도 했다.하지만 한식 세계화 사업에 애정을 쏟은 만큼 많은 구설에 올랐다. 김 여사의 요리책이 국민세금 5000만원을 들여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결식아동 돕기나 유방 예방 접종에 쓰일 예산이 김 여사가 이끄는 한식세계화 사업에 지원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의혹의 정점을 찍은 것은 올해 MB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이다. 김 여사와 MB의 아들 시형씨는 사저부지 매입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런 측면에서 박 당선인에게 퍼스트레이디가 없다는 것은 긍정적일 수 있다. 안방로비를 할 대상이 아예 없어서다.
위험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박 당선인에겐 두명의 동생이 있다. 근령씨와 지만씨다. 근령씨는 한국재단구호 총재이고, 지만씨는 EG 회장이다. 둘은 직업상 정계•재계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박 당선인이 눈을 질끈 감고 이들과의 관계를 차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비리 끊을 좋은 기회친인척도 의외로 많다. 친가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맏형 동희씨의 아들 박재홍 전 민자당 의원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둘째형 무희씨의 자녀로는 박재석 국제전기기업 회장과 박재호 동양육운 회장이 있다. 외가로는 가수 은지원씨가 박 당선인의 고모 귀희씨의 손자다. 박 당선인의 사촌형부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다. 현재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 사외이사인 한 전 총리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고문직을 오랫동안 맡아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미혼이다. 평소 “돌봐야 할 가족도, 재산을 물려줄 자식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가족비리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청와대 가족비리사건’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지금이 적기다. 늦으면 고리가 더 단단해진다. 그게 썩은 동아줄이라도….
김건희 기자 kkh4792 @thescoop.co.kr | @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