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 털고 나와도 일감 없어 발만 동동

[Cover 파트2] 새벽 4시 인력시장의 슬픈 풍경

2012-12-12     김정덕 기자

새벽 인력시장은 일감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몇 푼이라도 벌겠다며 새벽잠을 털고 나선 이들이지만 아무리 빨리 와도 일감을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아 일감이 예년만 못해서다. 일감을 구하지 못하면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발만 동동 구른다. 새벽 4시 인력시장에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흘렀다.

신정네거리역 인력시장으로 가 주세요.” “아직 젊은 것 같은데 실직하셨나 봐요? 어쩐데….”

새벽 인력시장을 찾아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말했더니 되돌아온 질문이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가 하위계층에 있음을 내포한 말이다. 실제로 비정규직 중에서도 고용이 가장 불안정하고, 임금에 비해 일은 힘들고 위험하며, 사회보장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이 일용직 건설노동자다. 이들이 막노동꾼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MB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들에게 햇살이 비쳤을지 모른다.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수십조원을 더 쏟아 부었으니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터다. 더구나 경제만은 책임지겠다고 했던 정부다. 좀 나아졌을까. 

외환위기 때보다 일감 더 없어

12월 3일 새벽 4시. 신정네거리역 교차로에 일자리를 구하러 나온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일감이 예약돼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30분쯤 지나자 양천구청에서 지원하는 천막이 쳐졌다. 천막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무리 사이에 슬그머니 꼈다. 한 중년에게 인력시장 분위기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일이 없다.” 난감해하는 사이에 옆에 있던 사람이 한마디 거들었다.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안 좋다. 기자 같은데,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다. 지난번에 이채필 고용노동부장관이 다녀가면서 사진을 찍고 그러던데, 나아지는 게 없다. 임금 인상은 고사하고 일감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그것조차 없으니 죽을 맛이다. 일주일에 많아야 3일 정도밖에 일을 하지 못한다.”
 

분위기는 냉랭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리지 말라는 식이다. 또 다른 노동자는 “몇년 동안 임금이 조금 올랐지만 물가는 훨씬 더 많이 올랐다”면서 “1만원 들고 시장 가봐야 살 게 없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속담이 인력시장에서는 예외인 듯했다. 꼭두새벽부터 9시까지 추위에 떨다 그냥 돌아가는 일이 잦아서다. 그래도 일찍 나오는 이유는 혹시나 해서다.

다음날 예약을 하지 않아도 당일 뽑혀서 일터로 가는 노동자들이 많다는 남구로역으로 가봤다. 이곳에서의 반응도 냉랭하긴 마찬가지였다. 나은 점이라곤 지방자치단체와 봉사단체가 운영하는 밥차 덕분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던 한 일용직 건설 노동자는 “무료 급식을 해주니 좋지만 일을 못 구하면 밥값도 못한 거 같아 소화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인력시장하면 흔히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떠오르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본의 아니게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전락한 사람도 적지 않다. 대기업에 다녔다는 조용철(가명)씨는 14년 전부터 인력시장에 나와 일했다.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그는 일감을 찾기 위해 서성이고 있었다.

“대우전자에 다니다가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 당했다. 40대 초반에 일을 그만뒀는데도 재취업이 어렵더라. 결국 인력시장까지 떠밀려 왔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돈을 모아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14년 전엔 ‘당분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이제는 몸도 따라주질 않아서 힘든 일을 하면 다음날 일을 못한다. 먹고살기가 점점 막막해진다.”

그가 인력시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하나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처와는 이혼했고, 외동딸은 14년 동안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실직을 한 후 삶이 힘들어지니까 처가 이혼하자고 하더라. 처음엔 화가 났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열심히 돈을 벌면 가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힘들어지니 지금은 거의 포기한 상태다.” 조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외동딸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내년이면 칠순이라는 최씨는 30년 넘게 인력시장에서 일했다. 지하철•아파트•관공서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현장을 다녔다. 그런 그조차 “요즘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몇년 전만 해도 건설업체에서 직접 차를 가져와 인부들을 모시듯 데려갔다. 하지만 지금은 현장 가는 차비까지 부담해야 한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 특히 중국인 노동자가 훌쩍 늘었다. 알선비와 차비 등을 빼면 부부가 하루 밥만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실제로 남구로역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국내 노동자와 중국인 노동자 무리가 나눠져 있었다. 가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싸움이 벌어지지만 일감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툰 적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상생할 줄은 안다.
 

중국인 노동자 무리에서 심양沁陽에서 온 32살의 젊은 청년을 만났다. 인력시장에서 이렇게 젊은 사람은 드물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한국에 왔다는 그는 인력시장 5년차다.

“아무래도 한정된 일거리를 나눠야 하니까 일감이 줄어들었을 거다. 중국 노동자들은 ‘돈 벌 생각’으로 한국 땅에 발을 들여놨기 때문에 힘든 현장도 마다치 않는다.”

좀 더 힘든 현장은 당일로 지방까지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의 가방엔 언제 어디서 며칠을 묵어도 될 정도의 살림살이가 들어 있었다. 상황은 국내 노동자도 다르지 않은 듯했다. 남구로역에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10년 넘게 노점을 했다는 상인의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나 지방까지 가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한국인도 많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힘들긴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일감은 줄고, 임금은 물가를 따라잡지 못한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삶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명박 정부의 연평균 건설투자 비용은 192조7390억원이었다. 참여정부가 연평균 155조5060억원을 투입한 것보다 19.3%나 많다. 그런데도 건설경기 악화로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일감이 줄어든 이유는 뭘까. 

밥은 못 줘도 쪽박은 깨지 말았으면

주승용 민주통합당(국토해양위원회) 의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보금자리 사업 등 대표적인 건설경기 부양책들이 건설업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3년간 22조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면서 건설업계 수주 물량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기반사업 예산이 줄어 건설사의 수주물량이 기존보다 줄어들었다는 주장이다.
 

주 의원은 “토목분야에 일거리가 부족해지자 건설사들이 주택사업으로 선회했는데, 주택경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건설업계 고충이 더 심화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의 성공은 돈을 얼마나 쏟아 붓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얘기다.

한 일용직 건설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노조들처럼 돈 올려달라고 떼쓴 적도 없고 일 못하겠다고 파업을 한 적도 없다. 그저 새벽에 나와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제발 다음 정권 땐 지금보다 상황이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좋아지는 건 사실 기대도 안 한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