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흔드는 불량 원전 부패 사슬부터 끊어야
[Special Repoer] Part1 | 원전 의혹 해소하려면…
2012-11-13 김정덕 기자
원자력, 핵발전으로 얽힌 이해관계 집단을 ‘원자력 마피아’라 부릅니다. 마피아라고 부를 만큼 우리 사회에 원전을 둘러싼 부패 카르텔이 강고합니다. 드디어 ‘원자력 마피아’를 해체할 때가 왔습니다.”
11월 6일 민병렬 통합진보당 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한 말이다. 원자력발전을 둘러싸고 너무나 많은 문제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문제점은 해결되기보다는 더욱 더 조직적으로 감춰지고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원전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수조원의 이권과 연결돼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이해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가 번질까봐 사실을 감추고, 주위를 돌리려 애쓴다. 마피아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얘기다.
지식경제부는 11월 5일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부품들이 원전에 대량 공급됐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원전은 더 이상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발전시설임이 드러난 셈이다. 부산과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 간부들에게 6300만원의 뇌물을 준 원전부품 납품업자에게는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는 11월 7일 긴급회의를 소집해 학계 전문가와 안전위 직원 등으로 구성된 민관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원전부품 품질검증서 위조사건’을 조사하고 다른 원전에는 짝퉁 부품이 유입되지 않았는지 여부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말이 민관 합동조사단이지 원전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한 시민단체는 철저하게 배제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이번 사건을 받아들이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태도다. 원전 관련 문제점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지만 정부와 한수원은 ‘문제없다’는 해명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올해 2월 발생한 부산 기장군 고리 1호기 정전사고는 정부와 한수원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리 1호기는 2007년에 수명이 만료됐다. 하지만 한수원은 “부품교체를 통해 수명을 10년 연장했다”는 이유를 들어 2008년 재가동을 결정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주민의 우려에도 한수원은 모든 안전성 검사를 마쳤다며 재가동을 강행했다. 올해 2월 9일 정전사고가 발생했고, 한수원은 한달 가량 사고사실을 숨겼다. 뒤늦게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건 은폐와 함께 중고부품 납품비리까지 함께 터져 나왔다. 이 일로 김종신 한수원 사장이 사퇴하고 ‘원전운영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또 그것뿐이었다.
심각한 원전의 ‘부패 카르텔’
안전성을 우려해 지역 주민과 정치인은 한 목소리로 ‘고리 1호기 폐쇄’를 주장했지만 폐쇄는커녕 한수원은 안전성 기준을 낮추려 했다. 고리 1호기는 아직도 폐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10월에만 신고리•영광•울진•월성 등 동시 다발적으로 총 4건의 운전 정치 사태가 발생했다. 한수원의 입장은 그때마다 “안전에는 문제없다”며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에 힘쓰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늘어놨다.
최근 대규모 부품 납품비리까지 터졌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10년간 7600여개의 원전 부품이 품질검증서가 위조돼 납품됐지만 한수원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수원 측은 “원자로•증기발생기•냉각펌프 등 안전성과 직결되는 핵심설비에는 설치되지 않았다”며 “퓨즈•스위치•다이오드 등 일반 기기류에 통상 사용되는 품목들로 원전 운영 보조 설비에만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또 짝퉁 부품이 부착된 기기에서 고장나더라도 “다중화시스템을 통해 대체 기기가 작동할 뿐 아니라 순차적 사고방지 시스템을 채택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지경부 관계자도 “해당업체가 공급한 부품은 최근 자주 일어나고 있는 원전 고장과는 무관하다”고 거들었다.
김균섭 한수원 사장 역시 원론적인 말만 계속하고 있다. 그는 원자력안전협의회 총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원전의 안전성 제고를 위해서는 원자력 관련 회사 CEO들의 관심과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으로 돌아가 규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것이 원전에 대한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더구나 한수원은 짝퉁 부품 사건의 장본인들인 납품업체를 보호하는 데 급급한 태도까지 보여, 빈축을 샀다. 납품 회사명을 공개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업체 관계자에 대한 취재도 거부했다. “업체들이 직접 위조했는지, 중간에 전문 브로커가 업체를 상대로 농간을 쳤는지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한수원이 납품업체를 감추는 태도를 취하자 시민단체들은 ‘한수원 등 원전과 관계된 공기업이 납품업체와 검은 커넥션으로 연결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원전을 운영하고 송전탑을 짓는 것은 한수원이나 한전 같은 공기업들의 몫이다. 원전을 많이 지을수록 이들의 몸집은 커진다. 공사계약이나 입찰도 많아져 지출액도 커진다. 떡고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7월 한수원 직원들이 원전부품 납품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된 사건은 이런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 터지면 ‘모르쇠’ 일관
김균섭 사장은 “사태를 수습하면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사퇴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연 2억3300만원의 고액연봉을 받는 만큼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만들어놓고 사퇴하는 게 순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장 뿐 아니다. 1억9500만원의 연봉을 받아간 이사진, 1억7100만원의 연봉을 받아간 감사, 연간 약 1500만원의 성과급과 평균 8000만원의 연봉을 받아간 직원들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전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쩌면 쉽다. 원전 문제는 대부분 잦은 고장에서 비롯됐다. 수십 년 운영하는 과정에서 시설이 낡은 것이라면 새 것으로 교체하고 안전점검만 잘 했으면 될 일이다.
부산 고리 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놓고 최선수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센터장은 7월 14일 홍석우 지경부 장관과 가진 면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입장은 무조건적인 가동중단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성과 관련한 ‘팩트’가 무엇인지 밝히려는 것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부와 한수원, 그리고 안전위가 깨달아야 한다. 더 늦으면 무서운 재앙이 올지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