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쓴 편지
유창창 개인展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때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언어를 통해 확고한 골격을 세우고 비로소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직감에 의지하지 않고 누구나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가. 자신의 감정들을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가. 혹, 말로는 온전히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있진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말한다.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우리의 감정, 이를테면 내면은 언어보다 깊고 넓다는 얘기다.
만화가로서 강렬한 작화법을 선보여 오던 유창창 작가가 불특정 다수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받는 이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아 편지는 ‘Dear’로 시작한다. 소곤소곤 귓속말로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듯 그는 애틋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띄웠다. 하지만 그 편지는 읽을 수 없다. 왜일까.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마음,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을 그는 그림으로 그렸다.
그의 손에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내면의 감정은 이미지가 됐다. 영원히 비밀로 숨어 있을 뻔했던 깊고 넓은 감정들이 이미지를 통해 바깥으로 표출됐다. 하지만 말로 다 하지 못하는 걸 표현하는 이미지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면을 고독하게 두지 않기 위해 형상과 색을 입힌다. 어떤 식으로든 외부 세계와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다.
또 하나. 이미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림을 예쁘게 그리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름다움이란 감정 역시 주관적이다.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동의하기 어려울지라도 그의 이미지들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림을 바둑에 비유하곤 한다. 바둑을 둘 땐 앞의 수를 보고 다음 수를 생각해 바둑돌을 놓는다. 그 역시 그때그때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과 상황들을 그린다. 유창창이 추상적인 형태와 색감으로 띄운 26편의 편지를 읽어볼 수 있는 ‘Dear’ 전시는 3월 27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갤러리2에서 열린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