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뭐? 돼지털?

디지털 세상, 아날로그 감성

2021-03-10     오상민 사진작가

#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용산역. 바닥을 조명으로 꾸며놓은 광장이 절 반깁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전자회로 같기도 하고 반도체 같기도 합니다. 문득 기억 속에서 장면 하나가 떠오릅니다. 

# 해질녘 전통시장. 퇴근길에 잠시 들른 듯한 남자가 생선가게를 서성거립니다.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떤 생선을 살지 고민하던 그는 휴대전화로 아내와 영상통화를 합니다. “이게 뭐야?” 생선가게 할머니가 신기한 듯 물어봅니다. 남자는 “디지털 세상이잖아요”라고 답합니다. 할머니는 의아한 표정을 짓습니다. “뭐? 돼지털?”

# 몇 분은 기억나셨을지 모릅니다. 일명 ‘돼지털’ 이야기는 2001년 한 전자제품 회사가 내놓은 광고의 한 장면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디지털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습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영상통화를 하고, 냉장고에서 화상전화를 한다는 건 상상 그 이상의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바로 사물인터넷(IoT)이네요. 

# 다시 용산역 광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명 광장 길을 걷던 한 남자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20년이 훌쩍 흐른 지금 누구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지털을 돼지털로 잘못 듣는 분도 거의 없을 겁니다. 

# 그런데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모든 게 디지털이 되어버린 지금 세상은 20년 전 그때보다 좋아졌을까요? 돼지털로 불리던 그 시대의 일상이 더 따뜻하진 않았을까요? 디지털로 포장된 용산역 광장을 보면서 ‘아날로그 감성’에 취해봅니다. “뭐? 돼지털?” 그때처럼 말이죠.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