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개념을 민화民畵에 살포시 담다

김상일의 Art Talk | 엄옥경의 아트 컨버전스

2012-11-11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경제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중국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현지 유명 컬렉터를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중국 작가들은 세계 유명 작가들과 어깨를 견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는 국내 화랑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작가들은 중국 현지에 개인 작업실을 열고 화랑과 미술대학은 레지던시(전속)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열정은 조금씩 식어갔다. 중국 미술시장의 커다란 장벽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다.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던 한국 화상이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대부분 철수되고 없다.
이런 와중에서도 ‘행복을 그리는 작가’ 엄옥경은 2006년 베이징 쑨좡에서 개최한 개인전 이후 최근까지도 현지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중국화단에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포부를 이같이 밝혔다. “문화적 장벽이 의외로 높은 중국미술시장에 한국예술을 널리 알리고 싶다.”

엄옥경은 길상의 의미를 갖는 꽃을 등장시켜 부귀ㆍ평안ㆍ사랑ㆍ축복ㆍ행복을 표현한다. 특히 연꽃이 흙탕물 속에서 청정함을 유지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연꽃에 맺힌 수많은 씨앗은 ‘다산’을 상징한다. 예로부터 연꽃은 불가佛家와 세속인의 사랑을 받았고, 모란은 부귀영화, 그리고 가정의 평화ㆍ안녕을 상징한다.

작가는 한국인에게 친숙한 자수나 장롱의 무늬, 비단실패와 골무, 미닫이문 등에 애착을 갖고 이런 대상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우리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꽃과 나비 외에도 우산ㆍ열기구 같은 소재를 사용해 현대인의 감성과 조화를 이루려고 한다.

섬유미술을 전공한 작가는 서양화가가 보여주는 물감의 겹침이나 덧칠 이외에도 입체감 등에 필요한 회화적 요소를 배제한다. 이런 이유로 모자란 부분은 디자인적 구성방식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일러스트’가 떠오른다. 이는 전통 산수화나 문인화 등의 전통기법과는 또 다른 자유스러움을 보여준다.
또한 엄옥경의 작품을 보면 평면적이지 않다. 소재 크기의 변화와 공간배치, 그리고 색감구성의 조화를 통해 입체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엄옥경은 현대예술 흐름의 추세를 보여주는 ‘아트 컨버전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각 사조나 각국 문화를 혼합해 새로운 콘텐트를 생산하는 아트의 영역이다.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와의 만남을 통해 아트 컨버전스를 꿈꾼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다양한 색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색은 다른 색과 어우러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세포가 모여 사람을 이루고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것과 유사하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일상생활의 변화를 주는 융(融ㆍ섞는다), 연(蓮ㆍ잇는다), 동(動ㆍ움직인다), 감(感ㆍ느낀다), 유(裕ㆍ쉰다) 등 추상적 개념을 민화 형태로로 풀어내고자 한다.

 

전시회 소식

고산금展 - 오마주 투 유 Homage to you

작가 고산금의 개인전이 11월 1일부터 17일까지 갤러리 선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고산금은 흔한 캔버스 회화 작업에서 벗어나 흰 목재 패널이나 검은 메탈 패널 위에 진주나 쇠구슬 같은 재료를 이용해 탈장르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소설, 시, 철학서 외에 신문, 대중가요의 가사, 법전 등에서 특정 부분을 발췌해 진주로 만들어 표현한다. 글자의 숫자 간격을 계산하고 진주를 빼곡히 붙여 나가는 지루한 반복 작업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인현展 - 100% REFURB SHOW

작가 이인현의 전시회가 11월 1일부터 12월 5일까지 가인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인현 작가는 6년 만에 갖는 개인전에서 그동안 파고 온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법을 보여준다. 물건을 ‘작품’ 위에 덧붙여 모든 것이 재생(refurbished)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은 액자처럼 표현하면서도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게 ‘시각(프레임)’효과를 줬다. ‘피처링(featuring)’ 개념도 도입했다. 정광호 작가의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서로 중첩시키는 등의 다채로운 시도로 눈길을 끌고 있다.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human3k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