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아이디어 듣고 테이크아웃 도입 ‘대박’
소통의 경제학, 불통의 실패학
2012-10-09 김미선 기자
몸집이 작은 기업도 때론 굴지의 대기업을 뛰어넘는다. 이들의 역량은 긴밀한 소통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소통이 활발하면 최신 정보를 얻기 쉽다. 의사결정이 빨라져 효율적 경영이 가능해진다. 국내 기업 경영진들도 소통경영에 눈을 뜨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한다. 하지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화제를 몰고 다니는 박용만 회장의 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직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회사 가기 싫다. 출근시간 지났는데 이불 속에서…”라는 글을 보고 “내 차 보내줄까”라고 댓글을 달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박 회장의 트위터 팔로워는 14만명이 넘는다. 그를 ‘트위터 스타’라고 부르는 이유다. 박 회장은 말단 직원의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변해 ‘친절한 회장님’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박용만 회장은 근엄하고 딱딱할 것 같은 기존 CEO의 선입견을 깨고 친근한 이미지로 직원은 물론 대중에게까지 어필했다. 이는 두산그룹의 이미지 제고에도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소통만큼 중요한 건 많지 않다. 특히 몸집이 큰 기업에겐 더욱 그렇다. 소통에 능숙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우수한 경영 성과를 내고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소통에 능한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원만한 성과를 내다가 갑자기 무너진 기업 대부분은 고객이나 조직 내부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직원과 소통 방식 여전히 미숙
국내에서도 ‘소통경영’은 보편화되고 있다. 회장이나 CEO가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하거나 맥주 ‘한잔’을 함께 하는 ‘호프데이’를 갖는 것은 예사다. 직원과 함께 영화를 보고, 피크닉이나 등산을 함께 가는 대기업 회장도 적지 않다. 실례로 김경규 LIG투자증권 대표는 매달 서로 다른 부서의 임직원을 모아 호프데이를 갖는다.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은 직원 생일파티에 빠지지 않고 축하말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사관리에만 소통전략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경영 분야에서도 ‘소통’은 중요한 전략이 됐다. 많은 기업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메신저를 통해 ‘브레인 스토밍(집단토론)을 한다. 임원회의에 젊은 직원들을 참석시키는 경우도 있다. KT는 토요일 격주마다 진행되는 임원 회의에 10년차 젊은 직원들 130명으로 이뤄진 ‘올레보드’ 청년이사회가 참석해 의견을 개진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소통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창구로 여러 의견을 모아 혁신의 발판을 놓겠다는 의미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 경영진들의 소통 방식은 여전히 미숙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얼마 전 모 대기업 총수는 직원들과 영화관람을 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소통의 장’을 스스로 열었다며 찬사를 늘어놨지만 실제론 ‘소통’할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무려 200명의 사원을 초청했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소통이 아니라 ‘쇼’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올 6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직원들과의 점심식사’를 내걸었다. 세계 최고 투자자 워렌버핏과의 점심식사를 떠올리게 하며 큰 화제가 모았다. 최근 경매에 나온 워렌버핏과의 점심식사 한끼는 무려 40억원이었다. 이 회장과의 점심식사에는 200명 가까운 신청자가 몰려 약 2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워렌버핏과의 점심식사만큼은 아니었지만, 굴지의 글로벌 기업 삼성의 ‘저력’을 증명한 사례라는 평가도 있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과의 점심식사 최종 선발자로 삼성 전 계열사 내 과장 7명, 차장, 대리, 사원 각각 한명씩 뽑혔다.
이벤트 참여자 공개 모집 약 2개월 만인 올 9월 4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이건희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점심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이날 점심식사에 참여한 직원들은 2시간여 동안 이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자세한 내용은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참가자 전원이 기념품으로 갤럭시S3를 받았다는 점만 집중적으로 부각됐다. 한편에서는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리는 이 회장이 소통의 장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고 평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2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보여주기 행사였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을 거다”라는 반응도 나왔다.
페이스북의 기업문화는 ‘수평적’이다. 직위에 상관없이 ‘할 말은 하는 문화’가 오랫동안 자리 잡혀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12월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는 400명의 직원들 앞에서 데이터 센터 운영과 관련한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자 입사 2개월짜리 풋내기 직원이 일어나 “당신 이야기는 완전히 틀렸다”고 말했다. 샌드버그는 이렇게 답했다. “맞습니다. 내가 틀렸고 당신이 맞습니다. 고마워요. 잘 지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이야기다.
외장형 GPU로 세계 1위를 제패하고 영화 ‘아바타’ ‘인셉션’의 3D프로그램을 만든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디비아의 CEO 젠슨 황. 그는 사무실도 없이 일한다. 캘리포티아 샌타클래라 엔디비아 본사에는 그의 방이 따로 없다. 젠슨 황은 “직원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방은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최신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라며 “CEO에게 직원은 가장 좋은 배움의 원천이자 정보 창구”라고 말했다.
소통은 조직 내부의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조직 간 상호협력과 시너지 창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젠슨 황의 소통 노력 덕분인지 엔디비아의 실적은 글로벌 금융위기 가운데서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엔비디아는 2011년 35억433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2010년(33억3000만 달러)보다 약 2만 달러 늘어난 수치다. 올해 매출 역시 39억9979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8% 성장했다.[미국 회계연도는 매년 10월 1일 시작해 익년 9월 30일에 끝난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훌륭한 리더나 감명을 주는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들은 상품 설명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품보다는 사람 관계에 근간을 둔다는 얘기다. 이런 유형의 대표적 경영인은 바로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다.
자연스러운 소통 필요
슐츠 회장은 1990년 텍사스의 한 스타벅스 점포에 강도가 들어 관리자가 사망하자 모든 일정을 미루고 전세 비행기를 마련해 텍사스로 가 유족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해당 점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유족에 기증하기도 했다. 화환이나 돈으로 조의를 표하는 국내 여러 경영진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일면식 없는 점주를 위해 며칠 동안 상주 노릇을 하는 것은 물론 이후 생계까지 고려해 점포까지 내어준 사례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불황의 시대다. 불황 돌파를 위해서는 경영진의 혁신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하지만 말뿐인 허울 좋은 소통은 오히려 원성만 살 뿐이다. 가식 없는 진정한 ‘소통’을 하는 좋은 리더는 결국 조직의 성공을 이끌어낸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