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린 꽃에서 창조주의 힘을 보다

김상일의 Art Talk | 화가 방희영

2012-09-14     김상일

예나 지금이나 꽃은 많은 작가에게 즐겨 사용되는 소재로 손꼽힌다. 회화작가 방희영 또한 꽃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그의 꽃들은 대부분 만개했고 화사하다. 활짝 피어난 꽃들은 바람에 실려 허공에 피어오르고 떨어지는 꽃잎들은 축복으로 다가온다.

꽃의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듯한 방희영은 꽃을 자유로이 펼쳐 놓음으로써 심적인 억눌림과 고뇌로부터 해방감을 만끽한다. 반면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접점의 순간에 작가는 떠남과 이별이란 심적 갈등을 느끼는 듯하다.

꽃과의 영원한 조우(遭遇)

“발아래 피어 있는 꽃들에 대한 사랑, 작은 놀라움, 작은 기쁨들이 나를 설레게도 하고 나를 슬프게도 한다. 꽃은 풍요로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덧없는 생명이 가련하고 무상하다. 꽃은 야성野性에서 초자연超自然으로, 찬란함에서 초라한 어둠 속으로, 생生에서 사死로 가는 수많은 인생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인생의 덧없음에 가슴 저리지만,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시작을 보며, 작고 연약한 세계 속에서 거대한 창조주의 힘과 의지를 느낀다. 눈물 후의 기쁨, 고통 뒤에 찾아오는 평안, 오랜 기다림 끝의 해후처럼 무지개 넘어 약속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선다.” 
-작가노트  중에서-

현대회화의 주재료는 서유럽의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유화나 아크릴 물감이다. 유화나 아크릴 물감은 국가별로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나라들은 별 차이가 없지만 동양이나 기타 후진국들은 열악한 상황이다. 물감의 차이는 그림이 주는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색상이나 발색 등 표현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시대변화 무관한 전통기법

현대문명이 낳은 간편함(디지털)은 현대회화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물감을 캔버스에 옮겨 그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물감의 질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질 좋은 물감을 사용하면 그림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영향을 배제하고 아날로그의 전통기법을 사용해 작업하는 화가 방희영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듯 캔버스 제작부터 템페라 물감을 직접 제조해 쓰고 있다. 이는 색채의 투명성과 채색의 깊이감 등을 얻고자 함이다. 템페라 기법은 유화의 모체라 할 수 있다.

템페라 기법은 기존의 캔버스 위에는 잘 고착되지 않기 때문에 중세의 장인들이 썼던 방법인, 천연 마천을 패널에 붙인 뒤 아교로 칠하고 그 위에 젯소(gesso)를 발라 대리석같이 희고 견고한 면을 만들어 간다. 또한 템페라는 물과 기름을 함께 사용하는 양면적인 유탁액(emulsion)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유성성분을 임의대로 조절하면 다양한 기법이 가능하다.

작가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은 밑그림이 은은히 내비치도록 템페라모제(tempera medium)를 여러 번 반복해 칠함으로써 투명감과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이콘화(Icon•聖畵)에서 볼 수 있는 금박 입히기 기법을 응용해 원형 틀 주위에 은박을 입힘으로써 디지털시대의 기계성과 반복성에 비켜가는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9월 2주 전시회>
이종한 - 골목길에서 놀다-지금 여기展
한지 공예로 골목길의 따뜻함을 표현하는 작가 이종한의 전시가 9월  5일부터 10월 3일까지 희수갤러리에서 열린다. 한지를 물에 불려 종이 찰흙을 만든 후에 다시 라이트 박스 위에 붙여서 제작한 작품들은 집집마다 한지의 고운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이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준다. 가파른 오르막에 층층이 쌓인 집들의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빛은 관람자에게 어린 시절에, 또는 젊은 시절에 골목길에서 나누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하상림展
꽃의 작가 하상림의  개인전이 9월  5일부터 29일까지 갤러리인에서 열린다. 하상림은 지난 2010년 전시에서 선보였던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한결 높은 단계로 심화시켰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화면을 가득 매운 선들은 기존의 작업에서 보여준 것보다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며 유연한 반면 날카롭다. 언뜻 평면적으로 비춰지는 화면은 선들의 두께와 교차점으로 인해 상당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면과 선의 두 색상만을 사용해 강렬한 대비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절제된 단 두 개의 색만으로도 느껴지는 풍부함이 있다.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human3ks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