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전쟁 영웅은 선비 같았다
제1편 서울 제1장 광화문 광장과 얼굴 ❷
서애 유성룡은 “이순신은 무인이자 장수였지만 그 모습은 선비와 같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의 내용을 다시 보실까요?
舜臣爲人 寡言笑 容貌雅飭 순신위인 과언소 용모아칙 如修謹之士 而有中膽氣 여수근지사 이유중담기 “이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었다. 용모는 단아하고 곧아서 마치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담대한 기운이 있었다.”
과거급제 동기 고상안도 유성룡과 비슷한 의견을 남겼습니다. “이순신 통제사는 나와 과거시험 동기였다. 그래서 여러 날 한 방에서 함께 지냈다. 그의 언변이나 지혜로 볼 때 국가의 위기를 수습할 만한 재능을 지녔음에는 분명했으나, 신체가 풍후豊厚하지 못하고 얼굴 또한 건순乾脣(위로 들린 입술)이어서 복장福將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김언종의 「이순신과 강감찬」).”
고상안이 “인상으로 봤을 때 복장福將은 아니다”고 표현한 부분은 당시의 인물관에 따른 것입니다. 현대적 관점의 복장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전엔 달덩이처럼 얼굴이 동그랗고 몸매가 통통한 여성들이 미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남자들도 몸매나 얼굴이 후덕해야 복상福相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많은 초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후덕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순신은 덩치가 엄청 크고 우락부락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고의 장수였지만 용맹한 무관武官보다는 지적인 문관文官에 가까 웠다고 할까요. 사진❷이순신 표준 영정은 그런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무신이 아니라 문신에 가까운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여전히 궁금합니다. 그분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을까요?
과학이 발달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종종 놓치는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그 후손입니다. 물론 서로 다른 배필配 匹을 만나서 대代가 이어지기 때문에 똑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순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후손을 통해서 그분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과학적입니다.
이순신에게는 다섯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셋째와 다섯째 아들은 후손이 없는 상태에서 돌아가셨지만 나머지 아들들은 결혼해서 대를 이었습니다. 충무공의 직계 후손들은 ‘덕수 이씨 충무공파’를 형성해 살아가고 계십니다.
저는 몇해 전에 이순신의 직계 후손을 처음 만나뵀습니다. 충무공의 13대손이자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해설을 하는 이종우님(사진❸)입니다. 이종우님은 혹시라도 선조인 이순신 장군에게 누를 끼칠까봐 끊임없이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사진❸도 어렵게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광화문 충무공 동상에서 표준 영정을 거쳐 직계 후손의 모습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이순신 장군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시나요? 충무공 이순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서울입니다. 다음호에선 이순신과 서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