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은 왜 한국 H&B 시장서 발뺐나
GS랄라블라의 과제
2018-04-02 이지원 기자
‘여성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H&B스토어 시장의 경쟁이 뜨겁다. CJ올리브영이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업계 2위인 GS왓슨스가 랄라블라(lalavla)로 이름을 바꾸고 공격적 출점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13년 만에 옷을 갈아입은 랄라블라는 CJ올리브영의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높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 이유의 맥락은 글로벌 유통업체 A.S왓슨이 한국시장에서 발을 뺀 것과 유사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GS랄라블라의 과제와 왓슨이 한국시장을 떠난 까닭을 취재했다.
H&B(Health&Beauty) 스토어 GS왓슨스가 지난 2월 랄라블라(lalavla)로 간판을 바꿨다. 랄라블라는 ‘Life is lovable(인생은 사랑스러워)’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20~30대 여성을 집중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2월 GS리테일이 A.S왓슨과 결별하면서 시작됐다. 왓슨스는 GS리테일과 A.S왓슨이 50대50으로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왓슨스코리아가 운영해왔다. 홍콩에 본사가 있는 A.S왓슨은 글로벌 유통업체라는 별칭답게 홍콩ㆍ대만ㆍ중국 등 아시아와 유럽 11개국에서 왓슨스 매장 6300여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시장에서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 왜일까.
가장 쉬운 답은 H&B스토어 시장점유율 1위 CJ올리브영에서 찾을 수 있다. CJ올리브영과 왓슨스는 각각 1999년, 2004년 H&B스토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올리브영이 시장을 개척했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왓슨스가 GS리테일과 손잡고 한국에 진출한 2004년까지만 해도 H&B스토어는 낯선 유통채널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브영과 왓슨스의 매장도 각각 30여개, 70여개에 불과했다.
둘의 격차가 벌어진 건 H&B스토어의 황금기가 도래한 2010년 이후다. 올리브영은 H&B스토어 시장이 가파르게 커지자 매장을 공격적으로 늘려나갔다. 2011년에는 가맹사업도 시작했다. ‘좋은 목이나 왓슨스의 주변엔 올리브영이 있다’는 말이 나돈 것도 그 무렵이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가령, 서울 신촌ㆍ홍대 일대에 있는 랄라블라(옛 왓슨스)의 주변엔 여지없이 올리브영이 있었다. 랄라블라 매장의 양옆 200m 거리에 올리브영 매장 두 개가 버티고 있는 사례(노량진)도 있었다. 그만큼 올리브영이 시장을 빠르게 선점했다는 얘기다. 2017년 기준 올리브영의 매장수는 960개로, 랄라블라(186개)의 5배가 넘는다.
올리브영의 놀랄만한 질주
이런 매장수 차이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올리브영은 1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면서 H&B스토어 1위 자리를 고수한 반면 업계 2위인 왓슨스는 갈수록 쌓이는 누적 적자 탓에 골머리를 앓았다.
전문가들은 왓슨스 부진의 이유를 ‘과도한 직영점 전략’에서 찾는다. 가맹점 전략을 펴지 않아 규모를 넓히지 못한 게 ‘바잉파워(Buying Power)’의 약화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점포수를 일정한 수 이상 갖추지 않으면 바잉파워가 약해 제품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면서 “유통ㆍ물류ㆍ관리비 등 고정비의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GS리테일은 가맹점 전략을 통해 랄라블라의 영토를 넓힐 계획을 세웠다. 직영점 오픈만으로는 올리브영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박희진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GS리테일은 랄라블라 직영점을 대거 출점하면서 적자가 심화됐다”면서 “1위인 올리브영을 따라 잡으려면 매년 200여개 매장을 출점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회사 관계자는 “가맹사업과 관련 결정난 사안은 없다”면서 말을 아꼈지만 GS리테일은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 홈페이지에 정보공개서를 등록했다. 언제든 가맹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해 놓은 셈이다.
문제는 GS리테일이 전권을 거머쥔 랄라블라가 올리브영을 뒤쫓을 수 있겠느냐다.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첫째 이유는 올리브영이 고속성장하던 H&B스토어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H&B스토어 시장은 더 이상 블루오션이 아니다”면서 “편의점 등 유통채널이 다양해져 H&B스토어 시장이 그렇게 독특해 보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경쟁 또한 예년 같지 않다. 롯데와 신세계, 두 유통공룡이 이 시장에 뛰어든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업계 3위인 롯데쇼핑의 롭스(LOB’s)는 지난 3월 이태원에 100호점을 열었다. 이는 역대 가장 큰 규모(860㎡ㆍ약 260평)와 가장 많은 제품수(1만여종)를 갖춘 매장이다. 롭스는 올해 50개 이상의 매장을 더 출점한다는 계획이다.
직영점 전략의 패착 독 됐나
신세계그룹의 이마트가 운영하는 부츠(Boots)도 지난해 하남스타필드에 1호점을 연 데 이어 11호점 오픈을 준비하고 있다. 부츠는 신세계가 영국의 유통업체 월그린부츠얼라이언스(WBA)와 협약을 맺고 운영하는 H&B스토어다. 고급 브랜드와 자체상표(PL)제품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쫓아오는 추격자(롭스ㆍ부츠)는 많은데 넘어야할 벽(CJ올리브영)이 너무 높은 랄라블라. 2위 자리를 지키고 ‘룰라랄라’할 수 있을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