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없으면 평생 못 잡는다”
변호사 4人 신종 리베이트 말하다
2017-02-21 고준영 기자
“가뜩이나 힘든 제약업계 영업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이다.” “우리나라 제약업계 구조상 리베이트가 위축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쌍벌제’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도입되는 등 리베이트 처벌이 강화되자, 업계의 입장이 두가지로 갈렸다. 누가 옳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현재 제약업계의 분위기를 보면 후자의 말에 힘이 실린다. 리베이트 처벌 강화 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종 리베이트 수법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종 리베이트라고 해서 별다른 게 아니다. 기존 리베이트가 제약사와 병원 사이에서 오고갔다면 신종 리베이트는 그 사이에 판매대행사 하나를 끼워 넣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방법으로 인해 제약사는 교묘히 법망을 피해나갈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이런 신종 리베이트 수법에 제재를 가할 방법은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다년간 의료 분야 사건을 맡아온 변호사 4인을 찾아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제약사의 신종 리베이트 수법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을 보자. 박호균 변호사 (법률사무소 히포크라)는 “제약업계 관행이었던 리베이트가 현행법상 불법이 되면서 제약사들이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리베이트를 고안한 것”이라면서 “제약사는 법인(대행사)에 자금을 주고 법인은 의료기관에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는 제약회사의 돈이 의료기관에 들어가고 그 대가로 제약사의 약품이 처방되는 것인데, 중간에 법인이 끼면서 제약사에 알리바이가 생기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제약사와 판매대행사의 관계도 중요하다. 김계환 변호사(법무법인 감우)는 “제약사와 판매대행사가 종속관계인지 협력관계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약사가 판매대행사의 실질적인 소유주라면 리베이트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제약사 임직원이나 관계인이 자회사를 차린 경우 종속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면 리베이트보단 일감몰아주기의 한 형태에 그칠 수도 있다. 종속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선 대행사 직원이 어디로 출근하는지, 지시감독을 어디서 받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판매대행사
박행남 변호사(법무법인 부강)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박행남 변호사에 따르면 제약사가 리베이트에 관여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선 두가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소득신고 매매대금과 판매대행사의 등기부등본이다. 소득신고 매매대금은 제약사가 판매대행사를 거쳤을 때와 직접 병원과 거래했을 때의 매매대금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차이가 있다면 영업비 명목의 리베이트 비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어서다.
또한, 판매대행사 등기부등본에 등록된 주주들 가운데 제약사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제약사가 대행사의 벌금, 수수료 등 손실을 보전해준다면 리베이트에 관계돼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실질적으로 제약사와 대행사의 관계를 입증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라고 변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유현정 변호사(유현정 법률사무소)는 “판매대행사의 결산보고, 지휘보고, 운영자금 등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지만 개인회사의 경우 문건을 남기거나 공시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입증하기는 어려울 공산이 크다”고 설명했다.
신종 리베이트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대행사를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할 시 적발되더라도 감형을 유도하거나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교묘하게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박행남 변호사는 “대행사를 거칠 경우 중간마진 등 직접적인 이득이 적다는 점, 기존의 리베이트 처벌 규정이 제약사와 의사 관계 중심으로 제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형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사의 리베이트가 2회 적발됐을 경우 해당 약품을 건강보험 급여대상에서 퇴출시키는 리베이트 투아웃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리베이트의 직접적인 주체가 제약사가 아니기 때문에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적용하기 애매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제약사의 혐의가 입증될 경우엔 되레 제약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현정 변호사는 “제약사가 대행사를 통해 리베이트 했다는 게 밝혀지면 죄질을 나쁘게 봐 형량이 무거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판매대행사라고는 해도 1~2인의 개인사업자가 대부분인데다 음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규모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증거가 될 만한 문건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네 변호사들이 “결국엔 내부고발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내부고발이 활성화돼야
박호균 변호사는 “신종 리베이트라고 해도 새로울 게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기존 수법이든 신종 수법이든 결국 수사의 시작은 내부고발이다. 관할보건소의 모니터링 등 감시체계가 있긴 하지만 수사기관이 아니다보니 한계가 있다. 게다가 실사를 한다고 해도 외부에선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선뜻 내부고발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내부고발로 제약사의 리베이트 행각이 드러나더라도 차명계좌와 현금거래 등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부고발자는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등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선 내부고발자에게 확실한 보상을 주는 것이 먼저다”면서 “내부고발이 활성화되면 시장 내 견제장치가 바로 서고, 기업은 스스로 감시시스템을 강화할 것이다”고 말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