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대행사에 로비 맡기면 ‘속수무책’
한림제약은 어떻게 빠져나갔나
2017-02-20 고준영 기자
부산 보건소에서 억대 리베이트 사건이 벌어졌다. 한 의사가 전직 제약사 직원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고 특정 약품을 사용했다는 게 사건의 전모다. 의사, 전직 제약사 직원 등이 기소됐고,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제약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어찌 된 영문일까.
하지만 이 사건은 찜찜한 결과만 낳은 채 마무리됐다. 뇌물을 주고받은 의사와 제약사 직원은 기소돼 재판을 받았는데 정작 제약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제약사 직원의 혐의만 입증됐다”고 말했다.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제약사의 지시 없이 판매직원의 ‘개인 일탈’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거다. 가능한 얘기일까.
이 사건에 연루된 제약사는 한림제약, 동아제약 두곳이다. 이중 한림제약 측은 “이미 끝난 일”이라면서 발을 뺐다. “당시 사건은 판매대행사에서 벌인 일이다. 리베이트를 공여한 직원은 우리 회사 직원이었지만 2008년에 퇴사했다. 지금은 한림제약 소속이 아니다.” 한림제약의 약품을 취급하는 사람이 리베이트를 주긴 줬는데, 제약사와는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어찌 됐든 한림제약은 법적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익명을 원한 제약업체의 한 직원은 “신종 리베이트 수법과 매우 유사하다”고 꼬집었다. 그가 말한 신종 리베이트 수법의 개요는 이렇다.
“제약사가 독립된 판매대행사를 세우거나 직원을 개인사업자로 내보낸다. 독립한 사업자는 기존과 똑같이 제약사로부터 인센티브 및 지시를 받고 리베이트를 제공한다. 실질적으로는 제약사 직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제약사와 관계가 없어 리베이트 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제약사의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한림제약의 주장처럼 법적 책임과 무관하게 판매대행사 스스로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말은 허점이 없지 않다. 제약사로부터 인센티브를 받는 판매대행사가 무슨 돈으로 억대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있겠냐는 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판매대행사는 영업직원의 대체재 성격인데, 인센티브도 당연히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리베이트를 제공하고도 남을 정도라면 그건 인센티브에 리베이트 비용이 포함됐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적발 이후의 리스크를 판매대행사가 홀로 감수하기엔 위험 부담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대행사가 자체적으로 리베이트를 했다가 적발되기라도 하면 그 회사는 업계에서 매장당한다”면서 “법적으로 처벌받고 업계에서도 퇴출 당하는데 어떤 대행사가 스스로 리베이트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판매대행업체를 이용한 리베이트를 적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변호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운영자금, 결산보고 등 문건을 확인하면 제약사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회사의 경우 문건을 남기거나 공시해야 할 의무가 없어 증거를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림제약 무혐의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