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엑소더스❷ 당신은 아직도 서울에 사시나요?

인구 1000만명 무너진 서울, 무엇이 문제인가

2016-06-15     김미란 기자

전국을 뒤덮은 미세먼지 농도는 오늘도 ‘나쁨’이다.  흐린 건 하늘뿐만이 아니다. 서울살이에 지친 이들의 마음에도 온통 먹구름이다. 언젠가 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질지 모른다. “아직도 서울에 사시나요?”

“서울살이 10년. 세번째 적금통장 해지. 어디어디 살아보셨나요? 봉천동, 석관동, 미아리, 옥수…. 다니고 다니다 깨진 건 적금통장 그리고 부부금실.” 뮤지컬 ‘빨래’의 OST ‘서울살이 몇 핸가요?’의 가사 일부다. 얻어갈 것이 많아 찾아왔던 서울에서 잃어만 간다는 생각에 잠 못 들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서울살이는 늘어간다는 애환이 담긴 가사다. 어디 노래가사뿐이랴. 살면 살수록 고되지는 게 바로 서울살이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최영민(가명ㆍ35)씨의 서울살이는 올해로 10년째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회사에 취직한 최씨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은 잠시 미뤄둔 채 돈부터 모으기로 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의 도움으로 전세방을 얻긴 했지만 살림은 늘 빠듯했다. 월급 오르는 속도보다 물가 오르는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최씨는 점점 더 서울 외곽, 점점 더 작은 방으로 밀려났다. 영화감독의 꿈도 자연스레 한해 두해 미뤄졌다. 하지만 꿈꾸는 것조차도 사치였던 걸까. 얼마 전 집주인은 또다시 전세가격을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어쩔 수 없이 최씨는 서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여전히 가슴 속에는 영화감독의 꿈이 꿈틀거리지만 그 꿈이 가슴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최씨는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최씨처럼 서울살이가 힘들어진 사람들이 하나둘 서울을 떠나고 있다. 4월에만 1만658명의 인구가 서울을 빠져나갔다. 서울 인구의 0.11%에 해당하는 수치다. 울산(-0.05%)과 대전(-0.05%)의 순이동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서울의 속도에는 크게 못 미쳤다. 그 때문인지 서울 인구는 28년 만에 1000만명 이하(5월 기준 999만5784명)로 떨어졌다. 2020년에는 976만명으로 줄어든다는 게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의 결과다. 이러다간 50년 후 아이들은 ‘1000만 도시 서울’을 환상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비싼 물가, 버틸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서울시민은 왜 서울시민이길 포기하는 걸까. 그들은 한결같이 ‘물가’와 ‘일자리’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서울의 물가가 비싸고 일자리가 없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거다. 이는 통계로도 증명된다. 지난해 서울의 물가상승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전국평균 전년 대비 0.7%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서울은 1.3%에 이르렀다. 가계지출에서 가장 많은 부담을 차지하는 주거비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시민의 체감경기도 하락하고 있다. 서울연구소가 지난 3월 14일부터 8일간 만 20~60세 서울시 일반가구 1009가구를 대상으로 생활형편ㆍ경기ㆍ물가ㆍ구입태도ㆍ순자산부채ㆍ고용상황 등을 물어본 결과, 지난 1분기 서울의 ‘소비자태도지수(현재와 미래의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수)’는 4분기 만에 하락세를 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분기마다 상승세였던 소비자태도지수는 2015년 1분기 79.9에서 4분기 86.9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올 1분기 83.9%로 3.0포인트 하락했다.

평균 대비 낮은 고용률과 높은 실업률도 서울살이를 힘들게 한다. 최근 두달만 놓고 봐도 고용률은 평균을 밑돌고, 실업률은 반대로 평균을 웃돌고 있다. 3월과 4월 전국 평균 고용률은 각각 59.6%와 60.3%를 기록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에 조금 못 미치는 58.9%, 59.5%였다. 실업률 역시 전국 평균이 4.3%, 3.9%였지만 서울시는 4.8%, 4.4%를 기록했다.

문제는 지금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비관적이라는 데 있다. 올 1분기 서울시민의 ‘현재소비지출지수’는 106.2를 기록했다. 1년 전(112.5)과 비교했을 때 다소 낮은 편이긴 하지만 3분기 연속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소비지출지수’는 얘기가 다르다. 지난해 1분기부터 조금씩 하락하다가 최근 그 폭이 커졌다. 올 1분기 기록한 미래소비지출지수 87.8은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기록이다. 향후 소비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기대치가 그만큼 낮다는 얘기다.

소상공인들의 불황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란 분석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설 이후 시장 매출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수산ㆍ축산ㆍ식품 품목의 물가가 오른 데다가 소비심리까지 위축돼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음식점은 방문고객이 줄어 매출이 거의 정체 상태다. 전년 동기 기준 평균 50% 정도 낮은 수준이다. 손님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대부분의 소상공인들은 ‘판매저하(52.3%)’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방문객 감소(13.8%)’ ‘인건비(12.3%)’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침체된 경기 탓에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이지만 각종 경제활성화 공약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서울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소상공인들은 20대 국회에서 ‘경기부양(32.1%)’ ‘민간소비회복(21.8%)’ ‘일자리 창출(11.5%)’ ‘소상공인골목상권 보호(10.3%)’ 등을 해결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총선 때 제시했던 경제활성화 공약에 대한 기대감은 5점 만점에 2.6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라는 게 있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는 거다.

“경제공약, 기대 안 한다”

서울시의 더 큰 문제는 해결할 문제들이 많지만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3~4월에만 ‘역세권 2030 청년주택’ ‘4.28 주거안정화 대책’ 등을 내놨다. 주요경제활동인구인 젊은층을 중심으로 탈脫서울 현상이 가속화되자 부랴부랴 내놓은 인구 감소 대응책, 이른바 ‘1000만 인구 사수 작전’이었다. 하지만 대책을 내놓기 무섭게 인구 1000만명 선이 무너졌다. 최근에는 서울시의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 차원에서 경유값 인상 대책을 검토했다가 “근본적인 대책부터 마련하라”는 여론의 뭇매에 백지화한 일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4월부터 서울연구원과 함께 일자리ㆍ교육ㆍ주거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오는 10월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높디높은 물가, 부동산 가격 등에 억눌린 서울시민의 기를 펴주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경제 덕에 성장한 서울시가 경제 탓에 울고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