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벤처ㆍ중소기업을 성장 DNA로

기진맥진 한국 경제

2016-05-24     양재찬 대기자

해마다 5월 셋째주는 중소기업 주간이다. 이러저런 행사와 이벤트가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청와대 초청 행사다. 2009년부터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것으로 관례화됐다.

이름하여 ‘중소기업인대회’. 올해도 지난 20일 점심을 함께 하는 형식으로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청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낸 중소기업인 모두가 자랑스러운 애국자”라고 치하했다. 지난 1년간 중소기업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16만8000명의 청년 일자리가 너무나도 소중하다면서.

하지만 거기까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기업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제치고 중소기업중앙회를 먼저 찾아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외쳤다. 기대를 걸었지만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중소기업 주간도 지나고 나면 그뿐, 이 땅의 중소기업인들은 다시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데도 대기업에 공급하는 물품의 납품 단가를 조정해달라고 말하지 못한다. 자칫 갑의 비위를 거슬렀다간 납품 길이 끊길 것을 염려해서다. 대기업이 이유 없이 하도급 단가를 후려쳐도, 하도급 대금을 몇달 뒤 현금화할 수 있는 어음으로 끊어줘도 아무 소리도 못한다.

중소기업과 제휴 협력한다면서 아이디어나 기술, 인력을 빼가는 못난 대기업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업무 제휴 단계에서 ‘내부 검토 중이니 기다려라’고 한 뒤 기술을 몰래 빼가거나 아이디어를 먼저 사업화하는 치졸한 수법이다.

특히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력 빼가기는 단순 스카우트에 그치지 않는다. 그 대상이 중소기업으로선 핵심 인력이라서 상도의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기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영업방해 행위다. 중소기업에겐 공들여 키운 기술 인력을 빼앗기는 동시에 어렵게 개발한 기술까지 함께 유출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늘 약자인 불공정한 상거래와 부당한 기술ㆍ인력 빼가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의 고질병으로 산업과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다. 기업이 창업한 지 3년까지 버틸 확률이 41.5%(2014년 기준 기업생멸 행정통계)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인 이유다. 나아가 창업 후 5년 생존율은 29%에 그친다. 10곳 중 7곳이 5년 내 문을 닫는 것이다.

이런 기업 생태계로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더구나 지금 구조조정 중인 조선ㆍ해운을 필두로 석유화학ㆍ철강 등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중후장대형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사실 지난 40년 동안 거의 같은 형태를 유지해온 중후장대형 산업이 경쟁력을 잃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우리나라 기술을 따라잡고 낮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기 때문이다. 그간의 중(화학)공업과 대기업 위주였던 산업구조를 경공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전환할 때다. 우리의 장점인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을 비롯 농식품, 제약, 패션과 관광 등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일자리 부족, 내수 침체, 중산층 붕괴, 사회안전망 미비-어느 것 하나 중소기업 육성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소수 대기업의 역량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 한국 사회의 불안 해소와 경제 재도약은 ‘9988(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 종사한다는 뜻)’로 대변되는 중소기업이 쥐고 있다.

기진맥진이다. 초록이 짙어가고 장미꽃이 만발했지만 사람들은 지쳐 한숨을 내뱉는다. 5월 여름더위에 걸핏하면 발령되는 미세먼지와 오존주의보 때문만은 아니다. 주력산업이 흔들리고 실직자가 양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여파로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1년 전 메르스에 감염돼 있을 때를 연상시킨다. 이럴수록 몸이 가볍고 민첩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을 성장 DNA로 삼아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