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일상을 흔들다

크랭크인 | 45년 후

2016-05-10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결혼 45주년을 맞이한 ‘케이트(샬롯 램플링)’와 ‘제프(톰 커트니)’. 부부는 며칠 후에 있을 결혼기념일 파티 준비로 분주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프의 앞에 편지 한통이 도착한다. 내용은 알프스 빙하의 틈에서 제프가 결혼 전 만났던 첫사랑 ‘카티야’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편지를 받은 뒤 제프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다. 옛날 사진도 꺼내보며 케이트에게 끊임없이 카티야 얘기를 한다. 케이트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불안해하고 죽은 그녀를 질투하기까지 한다. 스스로 첫사랑이 사라지고 난 뒤 빈자리를 메우는 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녀는 지나온 45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며 허무해한다. 그러나 제프는 과거의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작은 틈이 부부사이를 급속도로 얼어붙게 만든다. 한통의 편지가 평온하던 두 노부부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영화 ‘45년 후’는 데이비드 콘스탄틴의 소설 「In Another Country」를 각색한 작품이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부부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미묘한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로 사랑이 지속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감독을 맡은 앤드류 헤이는 2011년 ‘주말’이라는 퀴어 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주연을 맡은 두 배우의 연기 경력을 합하면 무려 112년. 젊은 감독 앤드류와 노련한 두 배우의 조합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미국의 영화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8%, 메타크리틱에서는 94점이라는 만점에 가까운 기록을 세운 것. 그뿐만 아니라 가디언, 버라이어티 등의 영화 매체들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베를린국제영화제도 열광하게 했다. ‘우아하고 절제된 영화’라는 호평을 받으며 평론가 평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연을 맺고 2년 만에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 샬롯 램플링과 톰 커트니는 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나란히 거머쥐었다.

45년 후는 관계와 믿음에 대한 섬세한 통찰을 그림 같은 영국 전원의 풍경과 함께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촬영은 영화 ‘밸러스트’를 통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롤 크롤리가 맡았다. 그는 깊고 복잡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두 배우의 미세한 눈빛까지 완벽하게 카메라에 담아냈다. 관객들은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부부의 감정선에 온전히 녹아들게 된다.

공인된 작품성과 농익은 배우들의 연기, 뛰어난 영상미가 영화가 가진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영화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관객들에게 듣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I Only Want To Be With You’나 케이트와 제프가 거실에서 춤을 출 때 들었던 로이드 프라이스의 ‘Stagger Lee’ 등은 1950~19 60년대를 풍미한 명곡들이다. 관객의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켜줄 영화 45년 후는 5월 5일 개봉한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