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y! Slump!

‘퍼펙트 스톰’ 에 휩싸인 글로벌 경제

2012-07-26     이윤찬 기자

  죽어가는 시장을 살린다며 정부 돈을 쏟아 부었다. 채권을 찍어 빌린 돈이었다. 시장만 살아나면 빚이 줄어들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글로벌 시장엔 여전히 찬바람이 분다. 활력을 불어넣고 싶어도 그럴만한 ‘돈’이 없다. “Sorry! Slump(경기침체)!” 불황이다.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미국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7월 18일(현지시각)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했다. FRB의 연례 의회보고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세계의 눈과 귀가 그의 입으로 쏠렸다. “헬리콥터(양적완화)에서 돈을 뿌리겠다”는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버냉키는 또 다시 원론적인 얘기만 늘어놨다. “필요할 경우 경기부양책을 시행할 수 있다.” (※버냉키는 2010년 10월 QE2(2차 양적완화•규모 6000억 달러)를 실시한 다음부터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조만간 QE3(3차 양적완화)를 실시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6월 소매 판매는 기대와 달리 전월 대비 0.5% 줄었다. 3개월 연속 감소세다.

미국의 6월 둘째주 실업수당 청구건수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장기 실업급여 수급자 역시 6월 둘째주보다 1000명 늘어난 331만명을 기록했다. 고용이 늘어야 소비가 촉진되고 경기가 살아난다. 실업수당이 늘고 있다는 건 미국경제가 침체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부터가 더 문제다. 미국기업의 올 2분기 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7월 셋째주에 발표되는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보다 낮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투자심리가 나빠져 미국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독의 로렌스 핑크 회장은 “재정정책 효과가 급감하는 올 11월 이후 미국은 ‘재정절벽(fiscal cliff)’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나대투증권 김지환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의 재정 정상화 압력과 정치적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미국경제의 성장 탄력은 하반기로 갈수록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대국 미국이 힘을 잃고 있다.

블랙홀 유로존 스페인은 올 6월 1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승인의 열쇠는 독일이 쥐고 있었다. 구제금융의 29%를 이 나라가 분담하기 때문이다. 결과는 좋았다. 7월 19일 독일 의회가 스페인 구제금융안을 승인했다.

한편에선 ‘스페인이 경제 위기의 고비를 넘어섰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섣불렀다. 스페인이 경제 위기를 탈출하려면 그보다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스페인 정부가 부채를 상환하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640억 유로를 더 조달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더구나 스페인 경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7%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11년 75.3%에서 올해 87.5%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3년에는 9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침체가 계속된다면 스페인에 투입되는 구제금융은 ‘밑 빠진 독’에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스 경제도 골칫거리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그리스가 8월 상환 예정인 국채환급을 위해 국제사회에 임시대출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추락하는 그리스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추가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양증권 신남석 리서치센터장은 “산업 경쟁력 부재, 예금인출과 자금이탈, 탈세 등의 이유로 그리스 경제가 정상화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로존의 재정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다.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갚을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김지환 센터장은 “남유럽 정치인의 자구적 대응 노력과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유로존의 불확실성은 조기에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멈춰선 세계의 공장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세계 각국은 중국 덕을 봤다. 금리를 떨어뜨리고 돈을 찍어내도 중국산(産) 저가제품 때문에 물가압력이 크지 않았다. 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고 재정당국은 재정정책을 맘놓고 펼쳤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하는 발판이 됐다.

앞으론 중국 덕을 보기 쉽지 않을 듯하다. 중국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7.6%로 떨어졌다. ‘바오바(8% 경제성장률 유지정책)’는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무너졌다.

동양증권 신남석 리서치센터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중국은 지금 고성장 후유증을 겪고 있다. 과잉투자와 주택버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향후 6~7% 경제성장률만 유지해도 연착륙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위기를 막아주던 중국 ‘방파제’에 구멍이 뚫렸다.

미ㆍ중ㆍEU가 흔들린다

글로벌 경제에 ‘퍼펙트 스톰(끔찍한 재앙)’이 몰려올 것이라고 예언한 이가 있다. ‘미스터 둠’ 누비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경제학)다. 루비니 교수는 6월 11일 싱가포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재정위기, 중국의 성장둔화, 유럽의 채무조정, 일본의 경기침체가 늦어도 2013년 결합해 세계경제가 30%가량 위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은 가계•기업•정부 부채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는 재앙을 말한다.

한편에선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이라고 비판한다. 한 경제학자의 지적이다. “루비니 교수는 원래 ‘최악의 시나리오’만 언급해 왔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조명 받았을 뿐이다. 그의 주장 중에는 옳지 않은 것도 많다.” 루비니 교수의 전망이 틀렸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는 그의 예언처럼 심상치 않은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보다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언급했듯 미국의 소매 판매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독일의 5월 소매 판매도 전월 대비 0.3% 감소했다. 미국•유럽경기가 침체하자 중국•한국•브라질•인도 등 신흥국 경제도 어려워지고 있다. 한 국가의 침체가 꼬리를 물고 다른 국가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이번 위기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인호 서울대(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후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재정정책은 미국의 유효 수요를 살리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면서도 “그런데도 효과가 미미해 보이는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가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 회복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경제의 침체가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세 계은행 김용 총재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세계 거의 모든 지역이 유로존 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유로존 위기로 전 세계 평균 성장률이 1.5%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

끔찍한 재앙 시작되나

지금은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확실한 처방이 필요할 때다. 방법은 두 개다. 첫째는 다시 돈을 푸는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에 활력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여의치 않다. 재정위기에 몰려 있는 남유럽 국가는 말 그대로 재정이 말라 버렸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으로 연명하는 처지다. 이탈리아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2단계 강등했다.

유럽계 금융기관 역시 ‘돈을 풀’ 처지가 아니다. 재정취약국의 국채 또는 부실화된 대출자산을 끼고 있는 유럽계 금융기관으로선 신용창출을 제대로 할 처지가 아니다. 지난해 재정지출을 줄이는 법안이 통과된 미 국도 추가적인 경기부양에 나서기 어렵다. 중국은 지방정부의 부실한 재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한금융투자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은 “전 세계가 부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부채가 조정될 때까지 적극적인 재정정책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은 방법은 긴축이다. 볼프강 소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긴축만이 유로존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단기적인 고통을 감수해야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공화당의 당론도 긴축에 맞춰져 있다. 특히 구제금융이 투입되는 그리스•스페인은 강도 높은 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양기인 센터장은 “대가 없는 구제금융 지원은 유로존 재정위기를 해결할 근본적 조치가 아니다”고 말했다. 송재학 센터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그리스 문제의 핵심은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약속한 경제 구조조정과 재정건전화를 예정대로 이행하는가’다. 이런 상황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로존 전체의 문제다. 유로존 경기회복과 지원금의 안정적 상환을 위해서도 EU가 직접 재정건전화 스케줄을 조정해야 한다.”

재정정책도, 긴축정책도 어려워 

그렇다고 긴축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건 아니다. 지금 긴축을 하면 침체의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긴축을 하면 사람들이 쓸 돈이 부족해지고, 정부의 세수가 감소해서다. 세수 확보를 위해 증세(增稅)를 해도 문제가 남는다. 세금을 올리면 세수가 늘어나지만그만큼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부자 증세는 ‘이데올로기’ 논란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국제금융시장 안팎에서 ‘강력한 글로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침체를 극복할 만한 대책이 딱히 보이지 않아서다. 민간연구기관 니어재단의 정덕구 이사장은 한 언론에서 “영웅적인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으면 사태 해결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뉴딜정책 덕이다. 케인즈라는 걸출한 경제학자의 식견도 한몫 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비상(非常)시기엔 비상(非常)한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다(The Scoop 창간호 참조). 글로벌 리더십이 실종됐기 때문에 이번 경제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선•총선을 앞둔 미국•독일 등 선진국의 정치 지도자의 결단력이 약해진 게 재앙을 키웠다는 얘기다. 공교롭게도 올해 말부터 내년까지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리더가 나온다. 침제를 벗어날 기회는 아직 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itvf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