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탓이라고? 갈 곳이 없다니까

유커 왜 등 돌리나

2016-02-24     김다린 기자

“서울시, 제주도를 빼면 갈 곳이 없다.” 최근 우리나라를 찾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터뜨리는 불만의 목소리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유커는 14만명이나 줄었다. 메르스 여파를 감안해도 감소세가 크다는 분석이다. 그사이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은 한국에게서 유커를 무더기로 빼앗아가고 있다.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이 청사진을 향한 시선은 희망적이었다. 2005년 59만명(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11%)에 불과했던 유커가 2014년에는 613만명(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43%)으로 훌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연평균 21.5% 증가’라는 기록적인 수치는 분명히 ‘유커 1000만명 시대’를 앞당기고 있었다.

정부와 업계의 노력도 더해졌다. 정부는 최근 ‘2016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중국 단체관광객의 비자 발급 수수료(97위안ㆍ약 1만7000원)를 올해 말까지 면제하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5년간 비자를 재발급 받을 필요가 없는 ‘복수비자’의 발급 대상도 확대했다. 유커의 국내 체류가능 기간도 30일에서 최대 90일로 늘렸다. 정부가 이렇게 올해 유커 800만명 유치를 목표로 삼자, 유통업계도 ‘유커 맞이’에 분주하다.

특히 새롭게 오픈한 서울 시내면세점들이 유커 유치에 큰 힘을 보탤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용산 아이파크몰에 1차 오픈한 HDC신라면세점과 한화의 ‘갤러리아면세점63’은 유커가 선호하는 화장품 브랜드를 다수 입점시켰다. 또한 올해 5월 오픈을 앞둔 두산과 신세계 면세점 역시 다양한 전략으로 유커들의 이목을 끌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유커 1000만 시대’의 흥을 깨는 통계가 나왔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유커의 수다. 598만4000여명. 전년 대비 2.3%가 줄어들었다. 관광 산업의 큰손인 유커가 줄어든 탓일까. 관광 수입도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2015년 우리나라의 관광수입은 전년 대비 14.3% 감소한 152억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메르스 사태로 6~8월 방한객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업계의 시선은 다르다. 유커 1000만 시대에 일찍이 적신호가 켜졌다는 거다. 이 시그널의 정체는 ‘일본행行 유커의 꾸준한 증가’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499만4000여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240만9000명)보다 107.3% 늘어난 수치다. 한국행 유커가 감소하고 일본행 유커가 증가했다는 것은 유커가 우리나라 대신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국은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동남아국가 등을 포함한 전체 외국인 관광객 숫자에서도 일본에 뒤졌다.

유커 감소 메르스 때문일까

지난해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총 1973만7000명으로 한국을 찾은 관광객(1323만2000명)을 크게 따돌렸다. 일본 관광산업이 7년 만에 한국 관광산업을 역전한 것이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2009년 781만8000명으로 당시 679만명이었던 일본을 뛰어넘은 뒤로는 우위를 내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유커가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병욱 경희대(관광호텔경영학) 교수는 ‘인프라의 차이’를 꼽았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관광의 질이 다르다”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커는 쇼핑을 하고 나면 할 일이 없는 반면 일본은 내수관광으로 다져진 다양한 역사ㆍ문화 인프라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커의 감소세가 메르스 때문이 아니라 ‘관광 콘텐트 부실’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커가 우리나라를 다시 찾는 일이 줄어들고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커의 한국 재방문율(2회 이상 방문자 비율)은 2011년 31.5%에서 2014년 20.2%로 낮아졌다. 머무는 기간도 10.1일에서 5.7일로 짧아졌다. 활동도 쇼핑에 지나치게 치중해 있으며 방문지가 서울과 제주로 국한되는 등 내용이 빈약했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대對중국 관광정책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경에는 엔저가 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2012년 말부터 대규모 양적완화를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 정책을 펴면서 엔저가 지속됐다. 낮아진 엔화가치 덕에 유커들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돈을 쓰는 게 더 유리해진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 호재를 놓치지 않았다. 2020년까지 방일 관광객 2000만명을 만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했다. 전국적으로 항공 노선뿐만 아니라 크루즈선 기항지와 항구를 대폭 증편하는 카드도 꺼냈다.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최대 무기인 ‘쇼핑’에서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면세점 시장이 그렇다. 우리나라의 면세점은 롯데ㆍ신라면세점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새롭게 문을 여는 면세점도 대기업 사업자가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면세점은 사전면세점 방식으로 세금을 미리 면세받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갈수록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지역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면세품을 사려는 수요는 늘어났는데, 면세점이 있는 특정 지역이 아니면 구입할 수 없어서다. 유커가 서울과 제주에만 몰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커의 발길 돌려 놓은 엔저

이런 면에서 일본의 면세점 사후면세점 정책은 우리나라 면세점 사업을 위협하고 있다. 사후면세점은 출국할 때 공항이나 항만에서 세금을 환급받는 방식이어서 불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즉시환급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사전면세점과 다를 바 없게 됐다.

일본은 2014년 10월 사후면세점 즉시 환급제도를 시행한 후 1년 동안 사후면세점 수가 5800개에서 무려 1만8000개로 3배 이상 늘었다. 우리 정부도 올해부터 부랴부랴 이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전병욱 교수는 “이미 중국의 SNS에서 우리나라 관광 콘텐트가 부족하다는 리뷰가 돌고 있다”며 “하루빨리 일본처럼 일관성 있는 정책과 전국 방방곡곡의 전통문화와 비경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