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많은데, 나 하나쯤이야…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괴물 ❺

2016-02-05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한강둔치에서 아버지(변희봉)를 도와 매점을 운영하는 박강두(송강호)는 성실하고 양심적인 업주는 아니다. 금방이라도 발밑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무릎 나온 운동복 바지에 어수선한 노란 염색 장발은 고객친화적이라고 볼 수도 없다. 손님이 부탁한 맥주안주 오징어 한 마리를 굽다가 내키는 대로 다리 하나를 뜯어 질겅질겅 씹는다. 익숙한 태도로 미뤄볼 때 상습적이다. 오징어다리 10개 가운데 ‘하나쯤’이야 표도 안 난다고 생각했겠지만 곧바로 고객의 ‘항의’에 직면한다.

독극물을 한강에 방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수구에 포름알데히드 100병을 폐기처분하라는 지시에 한국인 실무자는 찝찝해한다. 그러자 미군지휘관이 이렇게 설득한다. “크게 생각해보자. 한강은 거대하다. 이까짓 100병쯤이야….” 미군의 논법이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했는지 한국인 실무자는 통 크게 포름알데히드를 모두 하수구에 쏟아 붓는다.

2000만명의 수도권 인구가 오ㆍ폐수를 방류하는 한강이라면 ‘나 하나쯤’은 대수가 아니다. 아무도 오ㆍ폐수를 방류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쉽게 발동한다. 괴물테러로 숨진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분향소 관리인은 불법주차차량의 소유주를 찾기 위해 유가족 사이를 헤맨다.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한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차량이 분향소 업무를 마비시켰음이 분명하다.

민주정치의 발원지 아테네 역시 ‘나 하나쯤’ 정신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BC 5세기 직접민주정치를 실현한 아테네 시민은 4만3000여명으로 기록돼 있다. 아테네의 모든 중요 안건을 결의하는 민회(Ekklesia)는 통상 한달에 한번 혹은 2~3차례 소집됐다. 하지만 점차 ‘먹고 사니즘’에 빠진 ‘나 하나쯤’ 족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민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결국 6000명으로 대폭 하향조정된 의사정족수도 채우기 힘들어졌다.

아테네 지도자들은 ‘당근책’으로 아테네 도심 외곽의 민회참가자들에게 여비를 제공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아테네는 ‘채찍’을 든다. 민회가 소집되는 날, 붉은 진흙물을 담은 물통과 채찍을 든 ‘스키티아(Scythia)’라는 300여명의 노예를 번화가에 배치한다. 민회에 출석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나 하나쯤’ 족을 진흙물 채찍으로 때리기 위해서다. 진흙물 묻은 옷을 입은 시민은 모두 벌금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조치도 ‘나 하나쯤’ 족의 창궐을 막지는 못했고,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차츰 쇠퇴했다. 시민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정치는 부패했고, 그 결과 강성했던 아테네는 BC 430년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에서 스파르타에 참패를 당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 ‘민회’의 사정은 어떤가. 한달에 2~3번씩 출석해야 하는 아테네의 민회도 아닌데, 투표를 하지 않는다. 1대 총선 당시 95.5%에 달했던 투표율은 19대 총선에서 54.2%로 떨어졌다. 호주는 2013년 총선 당시 93.2%의 투표율을 보였다. 스웨덴은 85.8%(2014년), 독일은 71.5%(2013년), 미국은 64.4%(2012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투표율은 71%에 달한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의무투표제’를 시행한다. 호주나 벨기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고, 벌금 미납 시 징역형에 처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벌금부과와 함께 공직진출을 제한한다. 현대판 ‘스키티아’ 제도다. ‘나 하나쯤’ 정신이 아테네와 민주정치를 무너뜨렸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다.

괴물과 박강두 가족 간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는 한강둔치에 효과가 검증된 바 없는 미국산 초강력 바이러스퇴치 약품 ‘옐로 에이전트(Yellow Agent)’가 살포되는 날, 100여명의 시민은 약품살포 반대와 박강두 석방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다 고스란히 ‘옐로 에이전트’를 뒤집어쓴다. ‘나 하나쯤’ 정신을 거부한 그들에게서 민주정치의 희망을 찾는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 | 더스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