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의 사랑, 비극의 시작

김현정의 거꾸로 보는 오페라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2015-12-11     김현정 체칠리아|성악가(소프라노)

13~15세기 유럽을 풍미한 고딕 양식. 우리에겐 뾰족한 첨탑과 첨두형 아치 등이 중세 유럽의 건축양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고딕 스타일이 문학작품에도 존재한다는 거다. 해설로 시작되는 1700년대 작품으로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다. 고딕문학의 특징은 로맨스와 공포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중세 고성古城이 주요 무대다.

공포소설이라고도 불리는 고딕문학의 시초는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1764년에 쓴 「오트란토의 성」 이라는 소설이다. 영국 출신의 작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 발간한 「드라큘라」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고딕소설을 널리 알렸고 이후에는 ‘프랑켄슈타인’까지 소설에 등장한다. 특히 고딕소설의 대표작가인 월터 스코트(Walter Scott)의 작품은 오페라 대본으로까지 사용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고딕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원수 가문 사이의 금지된 사랑, 성을 둘러싼 어두운 배경 그리고 주인공의 광란狂亂이 공포소설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또한 피를 잔뜩 묻히고 하얀 가운을 입은 실성한 여인은 흡혈귀를 연상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여인이 부르는 광란의 아리아는 오페라의 백미로 꼽힌다. 이 아리아는 세기의 소프라노들이 30분가량 개인기를 발휘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1막 = 무대는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라벤스우드(Ravenswood) 궁성. 이 성은 한때 라벤스우드 가문의 소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아쉬톤(Ashton) 가문의 성이다. 그 성에서 ‘엔리코 아쉬톤’이 근심 가득한 모습으로 노래를 하고 있다. 그는 정치 싸움에서 밀렸다. 새롭고 강력한 연합이 필요한 상황으로 그의 여동생 ‘루치아’가 ‘아르투로 버클로우’경과 혼인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루치아가 혼인을 거부하고 있다.

엔리코의 충신인 ‘노르만노’는 그녀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녀가 매일 궁성의 광장에서 한 남자를 만나고 있어서다. 그는 예전 루치아가 미친 황소의 공격을 받았을 때 황소를 죽이고 루치아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남자가 원수 집안인 라벤스우드가의 ‘에드가르도’로 밝혀지면서 엔리코의 분노를 산다.

늦은 밤 광장의 분수 옆, 루치아를 걱정하는 시녀 ‘알리사’가 그녀가 겪을 고통을 걱정하며 헛된 사랑을 끝내라고 하지만 루치아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후 에드가르도가 도착하고 그녀에게 프랑스로 떠나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 전에 그녀의 가문과 화해를 하고 그녀에게 평화의 증거로 청혼을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엔리코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루치아는 그에게 조금 더 기다려 달라며 설득한다. 두 연인은 헤어지기 전 반지를 교환하고 결혼을 약속하는데…
김현정 체칠리아|성악가(소프라노) sny4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