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의 탈 쓴 여우 ‘야구판’ 흔들다
김태형 두산 베어스 감독의 리더십
2015-11-19 김미란 객원기자
지난해 10월 ‘미라클 두산’은 어수선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 올라 삼성과 자웅을 겨뤘던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3년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김진욱 감독의 석연치 않은 퇴진, 송일수 감독의 납득하지 못할 선임 등 각종 구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송일수 감독은 팀을 맡은 지 1년 만에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조직이 흔들리면 새로운 선장을 앉히는 게 상수다. 새 선장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면’ 혁신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산 역시 이 방법을 썼다. 새 감독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신임 사령탑의 경험이 일천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도 아니었다. 선수와 코치 시절 두산의 녹을 먹었다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었다. 야구계 안팎에선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이 감독에 올랐다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돌았다. 2015년 두산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김태형 감독은 이렇게 등장했다.
하지만 그는 떡잎이 다른 감독이었다. 과감한 결단과 용병술, 그리고 뚝심으로 난파선 두산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임 감독 3명(김경문ㆍ김진욱ㆍ송일수)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과다.
두산 관계자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지만 김 감독은 장점이 훨씬 많았다”며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리더십으로 난국를 돌파할 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개 ‘듣보잡’에서 ‘우승 청부사’로 변신한 김 감독은 기업 CEO가 배울 만한 리더십과 경영기술을 갖고 있다.
1 취사 선택은 확실하게 하라
투수 더스틴 니퍼트, 유네스키 마야와 재계약을 체결한 두산은 내야수 잭 루츠를 영입하며 2015년 시즌을 시작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규정에 따라 한 구단은 외국인 선수 3명(2명 출전)을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시즌 초반부터 용병傭兵이 말썽을 일으켰다. 루츠와 마야는 성적 부진으로 각각 4월과 6월에 퇴출됐다. 둘을 대신해 투수 앤서니 스와잭, 내야수 데이빈슨 로메로를 영입했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명실상부한 두산 에이스 니퍼트마저 부진과 부상으로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른 용병을 과감하게 내친 김 감독은 니퍼트에겐 기회를 줬다. 철퇴 대신 인내를 택한 것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언젠가 제몫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계산된 기다림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빛을 내기 마련이다. 니퍼트는 포스트시즌에서 평균자책점 0점대의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이번 한국시리즈가 ‘니퍼트 시리즈’라고 불릴 정도였다. 니퍼트를 믿고 기다린 김 감독의 뚝심이 아니었다면 두산의 우승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2 인재를 적극 발굴하라
김 감독은 2015시즌을 구상하며 마운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선발은 니퍼트와 장원준, 유희관이 있었지만 불펜진이 빈약했다. 노경은을 마무리로 낙점하긴 했지만 스프링캠프 막판에 부상을 입는 돌발변수가 터졌다. 160㎞대 강속구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강률도 시즌 개막 직후 인대 파열로 시즌 아웃됐다. 젊은 투수 중 그나마 경험이 많은 윤명준을 마무리로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다른 평범한 감독 같으면 벌써 “쓸 선수가 없다” “좋은 선수를 영입해 달라”며 툴툴 거렸을 상황. 김 감독은 달랐다. 내부에서 ‘인재’를 찾는 데 골몰했다. 이런 인고忍苦의 과정에서 발탁된 선수가 ‘이현승’이다. 선발과 불펜에서 잔뼈가 굵지만 마무리 경험이 없는 이현승에게 김 감독은 중책을 맡겼다. 일부에서 ‘역대 가장 약한 마무리’라는 부정적 평가가 쏟아졌지만 김 감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뚝심 하나로 이현승을 9회에 마운드에 올렸고, 뚝심은 알찬 열매로 이어졌다. 이현승이 포스트시즌에서 ‘인생투’를 잇달아 던졌기 때문이다. “흙 속 진주 같은 인재를 발굴했으면 주변의 평가가 어떻든 적극 활용하라. 그러면 결과가 나온다.” 이현승이라는 필승 마무리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 김 감독이 기업 CEO에게 주는 교훈이다.
3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다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삼성 라이온즈는 ‘공격의 팀’이었다. 정규시즌에서 ‘팀 평균 타율 3할’을 달성했을 정도로 공력력이 강하다. 준플레이오프부터 경기를 치러온 두산으로선 어려운 경기였다. 투수력이 바닥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위기 때마다 공격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공격이 곧 방어’라는 전략에서였다. 백미는 플레이오프 5차전 5회 상황이다. 2-2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5회 무사 2루 찬스를 얻은 두산은 타석에 선 허경민에게 번트 대신 강공을 주문했다. 1점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당연히 번트 작전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김 감독은 공격적으로 맞섰고 결국 빅이닝의 발판을 마련해 6-4로 승리,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의 공격야구는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기전은 수비’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야구의 일반론에 휩싸였다면 두산은 우승의 문턱을 또다시 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라는 진리를 김 감독이 보여준 셈이다.
스포츠마케팅 전문가인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스포츠산업ㆍ경영학) 교수는 “지난 시즌엔 6위, 올 정규시즌엔 3위에 그쳐 사실상 우승할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김 감독이 자신의 리더십을 성적으로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미라클 리더십’이라고 것이다.
김 교수는 선수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미라클 리더십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를 바탕으로 김 감독이 선수들의 능력을 100% 이상 발휘하게 만들었다는 거다. 외야수 김현수는 김 감독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진 않지만 한마디 한마디를 믿고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임 첫해 팀을 ‘14년 만의 우승’으로 이끈 김 감독. 축제를 마친 그의 어깨엔 숱하게 많은 과제가 쌓여 있다. 허약한 불펜진과 외국인 선수는 하루빨리 풀어야 할 과제다. 첫해 우승을 일군 감독을 짓누르는 부담감도 이겨내야 한다. 그의 두 번째 ‘미라클 리더십’이 필요할 때다.
김미란 더스쿠프 객원기자 lamer@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