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경제블록화, 더 노력하자
양재찬의 프리즘 | 3년 반만의 한ㆍ중ㆍ일 정상회의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국이 경제통합(가칭 동북아 경제공동체)을 이룬다면? 정치체제가 다르고 과거사 앙금이 남아 있어 쉽진 않겠지만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한ㆍ중ㆍ일 3국의 경제력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약 17조 달러로 이미 유럽연합(EUㆍ18조 달러)에 필적하며, 전 세계 GDP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피차간에 높이 쌓아 둔 무역장벽을 없애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됨은 물론 고용시장 사정도 좋아질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3국 정상이 지난 1일 서울에서 3년 반만에 만났다. 정상회의 직후 공동선언문이 나왔지만 3국 모두 새 지도자가 정권을 잡은 이래 첫 대면이어서 그런지 내용이 빈약하다. 세 나라 모두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판에 돌파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 차이와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같은 정치 이슈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래도 햇살은 비쳤다. 3국이 단계적으로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찾아냈다. 전자상거래 관련 규제와 장벽을 없애 ‘디지털 싱글 마켓(단일 시장)’ 구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잘하면 한ㆍ중ㆍ일 3국 15억 소비자가 대상인 디지털 시장이 열린다. 세계 LNG 수입 1ㆍ2ㆍ3위인 3국이 판매자에 유리한 LNG 계약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 대응하기로 한 데도 점수를 줄 만하다. 한ㆍ중ㆍ일 3국이 인접하고 여행객의 왕래가 빈번한 데다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에 공동 보조를 취할 부분이 많다.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일찍이 블록화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EU는 전체 교역의 63.8%가 역내에서 이뤄진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40.2%가 끼리끼리 교역으로 관세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들과 경제력이 비슷한 한ㆍ중ㆍ일 3국의 역내 무역 의존도는 고작 19.4%다.
물론 경제블록화의 길은 순탄치 않다.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물자가 들락날락할 수 있어야 한다. 인적 교류를 늘리려면 비자 면제가 필요하다. 물적 교류를 확대하는 데에는 관세 철폐는 물론 관계국 간 서로 다른 소비세율의 조화도 요구된다. 3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개인이나 정당의 이익이 아닌 진정으로 국가 미래를 염두에 둔 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두 자릿수를 구가하던 성장 엔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올해 7% 성장률도 지키기 어려운 데다 앞으로 계속 떨어지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한 농민공들이 일자리를 잃어 사회가 불안해진다.
일본의 최대 약점은 천연자원 부족이다. 해상교통이 막히면 국가 기능이 마비된다. 호르무즈 해협과 말래카 해협, 남중국해 모두 일본의 생명선이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치 상황에 민감한 이유다. 한국도 이런 면에서 보면 섬이나 마찬가지다. 3면이 바다이고 대륙으로 통하는 길은 북한에 차단되어 있다.
경제는 구호만으로 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중국 시진핑 정부가 창신創新경제,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혁신정책을 외치는데 모두 자국에서만의 활동으론 한계가 있다. 한ㆍ중ㆍ일 3국이 서로 협력을 강화해 경제 재도약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3년 반만의 첫 술 밥에 배 부를까. 3국 정상회의를 정례화함은 물론 더 자주 만나야 한다. 각료회담과 경제단체 및 기업인들의 비즈니스 서밋도 마찬가지다. 이를 활성화는데 지정학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