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외쳐 대는 경제부총리

양재찬의 프리즘 | 3분기 1%대 성장은 ‘빚 성장’

2015-11-03     양재찬 대기자

올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2%(전기 대비)로 나오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프라이즈하다”고 평했다. 온갖 부양책에도 5분기째 지속된 0%대 성장을 벗어난 게 대견했던가. 내년 4월 총선 출마를 앞둔 ‘정치인’ 입장에서 반가웠으리라. 그래도 그렇지 정부의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로서 부양책을 진두지휘한 책임자가 대놓고 자화자찬한 것은 ‘당사자 부적격’에 해당한다. 정책 추진 결과에 대한 평가는 자가발전이 아닌 시장과 외부 전문가에 맡겨야 옳다.

경제사령탑의 ‘당사자 부적격’ 발언은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있었다. 그는 2011년 8월 취업자 수가 49만명 늘어나자 “빅 서프라이즈”라며 환호했다. 두 달 뒤 10월엔 50만명을 넘어서자 “고용 대박”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박 장관의 평가는 고용 현실을 모르는 착각이었다. 청년실업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가운데 생업전선에서 은퇴할 시기인 5060세대의 생계형 취업이 증가한 것을 놓고 자가발전을 한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경제사령탑이 ‘보고 싶은’ 고용지표만 보며 청년 일자리 창출 등 고용확대 정책을 실기失期했다면 박근혜 정부 경제사령탑은 ‘정부와 가계의 빚에 기댄 성장’을 내수 활성화로 포장함으로써 시장에 그릇된 신호를 보내면서 경제의 고질병을 악화시키고 있다.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가운데 민간 소비가 3분기 성장을 떠받쳤다지만 반짝 효과일 뿐 속상처는 언제 곪아 터질지 모른다.

추경예산을 편성해 정부 지출을 확대한 만큼 국채 발행으로 국가채무가 불어났다. 주택거래와 분양이 활기를 띤다지만 그 상당수가 치솟은 전셋값을 견디다 못해 빚을 내 집을 사거나 아파트를 분양받는 경우다. 자동차가 더 팔린다지만 이것도 연말까지 개별소비세를 인하함에 따라 내년 소비를 앞당긴 측면이 강하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 증대에 따른 내수 활성화가 아닌 정부와 가계 빚을 당겨 쓰는 소비는 이내 한계에 봉착한다.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가 연말에 끝나면 내년 초 ‘소비절벽’이 현실화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최대 물량으로 호황이라는 아파트 분양 시장에도 이상기류가 감지된다. 수도권은 분양 열기가 뜨거운 반면에 지방에선 미분양 주택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2~3년 뒤 입주 시점에 준공 후 미분양 사태를 빚을 수 있다는 신호탄이다. 여기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국내 금리가 오르고 집값마저 떨어지면 주택시장 발 금융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빚에 허덕이기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30대 그룹 계열사의 20%가 장사를 해도 이자를 못 내고 있다. 제조업은 이보다 많은 30%가 그 지경이다. 이는 지난해 국내 제조업 매출이 1961년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 줄어든 것과 연결된다. 한국경제를 떠받쳐 온 수출 주도 성장과 제조업 성공 방식이 수명을 다했다는 경고음이다. 게다가 올해 대외 환경은 더 나쁘다. 최대 시장인 중국의 경기 둔화, 세계 교역량 감소, 일본의 엔저 공세, 중국 제조업의 급부상 등 사면초가다.

지금 괜히 ‘성장률 서프라이즈’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내년 초에 닥칠 ‘성장률 쇼크’에 대비해야 한다. 1%대 성장이 지속될지 불투명하고 대외 환경도 험난한 판에 마음이 표밭에 가 있는 최경환 부총리가 지나치게 성과물을 자랑하고 나선 것은 아닌가. 책임 의식이 있는 경제사령탑이라면 이런저런 부양책으로 빚을 키우기보다 우리가 처한 경제 현실을 정확히 알리고 정부와 기업, 가계의 빚 구조조정에 나섰어야 했다.

이참에 정치인 출신을 경제사령탑에 앉히는 것도 삼갈 일이다. 선거를 의식해 자꾸 선심성 정책에 손을 대고, 후유증이 도사린 성과물을 서프라이즈라고 우기고, 장밋빛 전망을 해 대면 그나마 남아 있는 한국경제의 경쟁력마저 손상시키기 십상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