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시아나는 왜 중국인 청년 자살 못 막았나
출국대기실의 불편한 진실
삭풍朔風이 부는 쌀쌀한 날이었다. 2013년 12월 10일 오후 2시 40분. 중국인 창(가명·1985년생)과 일행 1명(부인으로 추정)은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省都에서 아시아나항공(이하 아시아나) OZ324편을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을 경유, 미국 연방 ‘사이판’으로 가는 게 이들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창과 그 일행은 ‘사이판행行 비행기’인 아시아나 OZ605편에 오르지 못했다. 미국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아시아나 측에 ‘탑승시키지 마라’는 영令을 하달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입국 거절’이었다. 이 경우 항공사의 매뉴얼은 간단하다. 입국불허자(창과 일행)를 원래 출발지(쓰촨성 청두)로 돌려보내면 된다. 운임은 입국불허자의 몫이다. 입국불허자가 송환送還을 거부하면 ‘출국대기실(Detention Room)’로 보내야 한다.
창과 그 일행이 그런 경우였다. 중국 청두 송환을 거부한 이들은 인천국제공항의 한쪽에 있는 출국대기실로 옮겨졌다. 이곳은 입국을 거절 당한 외국인이 출국할 때까지 대기하는 장소다. 하지만 말이 ‘대기’지 창과 일행은 출국대기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한국 법무부 출입국관리소가 강제 송환을 결정하는 데까지 3개월이나 걸렸기 때문이다. 이들의 강제송환일은 2014년 3월 11일, 편명은 아시아나 OZ317로 정해졌다.
송환 작업은 그날 새벽 6시에 시작됐다. 출국대기실 운영업체 ‘프리존’의 보안요원(guard)과 아시아나 직원이 먼저 창을 OZ317 게이트로 유인, ‘보딩(boarding·태우다)’을 꾀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온몸으로 탑승을 거부하던 창이 자신의 혀를 깨물었다. 신경이 끊긴 혀가 돌돌 말리면서 창의 기도를 막았고, 이내 심장이 멈췄다. 말 그대로 ‘비상非常 사태’. 보안요원과 아시아나 직원이 부랴부랴 공항구급대를 불러 심장이 멎은 창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뇌사’에 빠진 뒤였다.
창의 심장은 그로부터 사흘 뒤인 3월 14일 오후 3시 38분에 싸늘하게 식었다. 다발성 장기파손(Multiple organ failure), 저산소로 인한 뇌손상(Hypoxic brain damage)이 사망 원인이었다. 창의 강제 보딩을 시작한 지 87시간38분, 그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지 95일 만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중국인 청년의 사망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입국불허자’ ‘출국대기실’ ‘송환구역’에 숨은 불편한 진실이다. 창의 사례처럼 입국을 거부 당한 외국인들이 잠시 머무르는 출국대기실은 국내에 8개(인천·김포·제주·김해·청주·대구·양양·무안국제공항)가 있다. 입국불허자의 수는 한 해 10만명이 넘는다.
여기에는 입국 목적 불분명자, 위·변조 여권 소지자 등 입국이 거부된 외국인, 난민難民 신청 허가가 불허된 외국인이 뒤섞여 있다. 출국대기실의 문제가 대부분 ‘난민’과 결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민 문제가 입국 목적 불분명자, 위·변조 여권 소지자보다 훨씬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한 중국인 청년의 죽음
김성인 난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 난민 지위를 얻으려는 외국인이 출국대기실에 장기간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출국대기실의 모든 문제는 난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출국대기실에선 우리가 잘 모르는 인권침해 사건이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욕설이나 폭행을 하거나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등 기본 인권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개선된 게 이 정도라는 점이다. 2013년 10월까지만 해도 입국불허자들은 좁아터진 출국대기실에서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러던 2014년 1월 ‘난민 신청’ 불허 이후 출국대기실에서 장기 거주하고 있던 한 수단인이 ‘인신보호구제’를 청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청구 이유는 이랬다. “입국이 불허된 외국인을 외부와의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 장기간 머무르도록 강제하는 행위는 법률상 근거 없이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한국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 의미 없는 싸움을 걸었다’는 분석이 많았지만 대법원은 예상을 깨고 수단인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8월 “출국대기실 내 수용이 인신보호법상 위법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는 그해 10월 출국대기실을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전환했다.
이런 개선에도 출국대기실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입국을 거부하는 결정자와 입국불허자를 관리하는 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거부 결정은 정부, 관리는 항공사가 한다. 사례를 보자. 인천국제공항 출국대기실의 임차인은 법무부다. 임대료도 당연히 법무부가 낸다. 하지만 식사비·인건비(보안요원 등)를 비롯한 일반관리비는 항공사들이 갹출해 지불한다. 인천국제공항의 경우 월 4596만원이 든다.
그렇다고 항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것도 아니다. 항공사의 용역을 받은 업체(현 프리존)가 입국불허자를 관리한다.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법무법인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가입한 민간항공협약(ICAO)은 입국 거부의 사유가 서류 상의 문제(비자 확인 없이 승객 탑승 등)가 아니라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입국불허자를 대한민국 정부가 맡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ICAO는 UN 산하 항공 전문 기구다. 국제항공의 스탠더드 정책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일본, 프랑스 등 191개국이 가입해 있다.
구멍 뚫린 입국불허자 관리시스템
이런 빈틈은 또 다른 난제難題를 유발한다. 입국 거부 결정자와 입국불허자를 관리하는 주체가 다르다 보니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때가 많다. 사고가 터지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법무부 측은 “출국대기실은 규범적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입국을 불허했기 때문에 출국대기실에서 터진 사건은 정부의 소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항공업계의 주장은 다르다. “입국불허자를 위한 수용시설(출국대기실)은 국가기관의 행위로 발생한 것이다. 모든 관리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때문에 출국대기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출국대기실에서 발생한 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말을 이었다.
“얼마 전 한 외국인이 출국대기실 관리자에게 구타를 당했다며 의뢰해 왔다. 곧바로 고소를 진행하려 했지만 누가 때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포기했다. 출국대기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환구역(Transit Zone)’도 사각지대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송환구역 역시 우리 영토가 아니다”면서 “특정인의 강제 송환 여부는 정부가 결정하지만 (강제송환자를) 보내는 책임은 항공사에 있다”고 주장한다. 법적 근거도 제시한다. 출입국관리법 제76조다. “…외국인의 강제송환이 결정되면 운수업자는 자신들의 비용과 책임으로 해당 외국인을 지체 없이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해야 한다….” 정부가 아닌 항공사가 입국불허자의 강제 송환을 책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다.
익명을 원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입국불허자를 강제 송환할 때 통상 항공사 직원 1명, 출국대기실 운영업체 직원 1명이 인솔한다”면서 “법무부 직원, 경찰 등은 동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송환구역(또는 기내)에서 사고가 터지면 초동 대처뿐만 아니라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건 이 때문이다.
중국인 청년 창의 사망 사건은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시계추를 다시 2014년 3월 11일로 돌려 보자. 그날 새벽 6시 창을 중국 쓰촨성 청두로 강제 송환할 때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 인천공항경찰대, 의료진은 없었다. 항공사에 강제 송환 책임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창이 일행에게 “중국으로 돌려보내면 자살할 것”이라는 말을 수차례 했음에도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은 셈이다. 창의 강제 송환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인천공항경찰대는 사건 현장을 아예 보지도 못했다. 창의 시신은 부검을 하지 않은 채 화장火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경찰대 관계자는 “창이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에 신고가 접수됐다”면서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땐 사망한 상태였고, 아시아나 직원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자살이라고 판단했다”고 털어놨다.
정체불명의 무서운 시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출국대기실과 송환구역을 “정체불명의 시설”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아우성을 쳐도, 울분을 토해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 나가도 세상은 이곳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정부는 “나랏일이 아니다”라고 발뺌하고, 항공사는 “왜 우리가 나랏일을 대신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와중에 중국인 창은 하늘로 떠났고, 사건은 땅에 묻혔다. 출국대기실과 입국불허자의 끔찍한 현주소다.
이윤찬·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