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없는 분양광고, 뻔한 ‘유혹의 기술’

분양시장 거품 많은 이유

2015-09-04     김정덕 기자

아파트 분양시장은 거품이 많다. 모델하우스에 사람들이 북적대도 실제로는 인기없는 경우가 많아서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는 “분양광고에 가격을 명시하지 않는 게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파트 가격을 모르는 소비자가 모델하우스를 찾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는 거다. ‘분양광고, 유혹의 기술’을 짚어봤다.

“일단 모델하우스에 들러서 상담부터 받아보시죠.”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고 전화를 하면 으레 듣는 멘트다. 사실 소비자는 전문투기꾼이 아닌 이상, 평생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집을 고르면서 수익성만 따지지는 않는다. 교통ㆍ교육ㆍ생활환경 등을 골고루 따지게 마련이다. 가격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값은 생애 가장 큰 지출이라서다.

그런데 막상 모델하우스를 방문해 기가 막히게 꾸며놓은 집을 보면 많은 소비자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저런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하는 거다. 게다가 모델하우스는 집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옆에서는 마케터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인기가 많은 지역이니 투자상품으로도 손색없다”고 부추긴다.

물론 인근 부동산중개소 곳곳에 들러 시세를 따져보고, 거래 동향을 물어보는 소비자도 많다. 하지만 부동산중개소 업자 역시 거래물량으로 먹고 산다. 모델하우스 마케터와 다를 게 없는 조언을 늘어놓는다. ‘모델하우스와 그 인근 부동산중개소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주택매입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며 하소연하는 소비자가 비일비재한 까닭이다.

아파트 분양업자들도 “일단 실수요자를 모델하우스까지 데려오기만 하면 충분히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친다. 인터넷에서는 “1년 만에 빌라 100채를 팔았다”는 등 ‘분양의 신’ 혹은 ‘분양의 달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판을 친다. 이들은 각종 사은품으로 ‘사람 끌어 모으기’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피해는 대부분 소비자의 몫이다. 생애 가장 큰 지출이라는 ‘주택매입’을 ‘열풍 또는 사탕발림’에 휩쓸려 하게 되니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분양 100%라고 하던 아파트에 난데없이 할인분양이 진행돼 입주민들이 건설사와 갈등을 벌이는 건 대표적 사례다. 

건설사들이 최근 휘말렸던 소송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구월주공재건축조합이 아파트 하자를 문제 삼은 49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기각), 영종힐스테이트 분양계약자 695명이 제기한 919억원의 분양대금반환청구소송(원고 일부 승소) 등에 얽혔다. SK건설은 아파트 분양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647억원의 분양대금반환ㆍ손해배상청구소송에 휘말렸는데, 법원은 올해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대림산업도 1738억원의 분양계약취소ㆍ분양대금반환소송에 걸려 분양대금 일부를 돌려줬고, 일부 재판은 진행 중이다. 삼성물산은 수원인계재건축조합이 제기한 176억원 손해배상소송에 물려 있다. 다른 건설사들 역시 비슷한 소송을 치렀거나 진행 중이다. 이런 법적분쟁이 끊이지 않는데도 비슷한 일에 얽히고설키는 소비자는 또 발생한다. 대체 이유가 뭘까. 해답은 ‘분양광고’에 있다.

각종 매체에 게재되는 분양광고에는 가격이 없다. 당연히 소비자는 현장을 제 발로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가짜 분양 열기’의 시작이 된다. 한 부동산마케팅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분양광고에 가격표가 공개되면 가격조건이 맞지 않는 소비자는 모델하우스를 아예 들르지도 않을 것이다. 가격표가 없으면 때에 따라 할인분양도 할 수 있다. 당연히 건설사가 분양광고에 가격을 명시할 이유가 없다.”

이에 따라 분양시장은 왜곡된다. 가격을 모르는 사람들이 분양시장을 찾고, 이런 현상을 각종 미디어가 ‘열풍’이라고 화끈하게 묘사하면 사람들이 더 몰린다. 익명을 원한 분양시장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국내는 물론 글로벌 경기가 ‘저성장’이라는데, 아파트 분양시장만 활황으로 묘사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열기가 뜨겁다는 것도 모자라 일부 지역은 아파트 가격이 치솟았고, 다른 일부 지역은 신규 분양물량 마감이 임박했다며 ‘서두르라’고 조언한다. 물론 실제로 가격이 오른 지역들도 있고, 분양 대기자들이 몰리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이는 주택을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뻔한 기술일 뿐이다.”

분양광고 ‘가짜 분양 열기’의 시작

물론 주택분양시장이 지난해보다 활기를 띤 건 사실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74만459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2% 늘었다. 아파트 신규분양 물량도 지난해(13만3963호)보다 6만7147호 더 늘었다. 문제는 미분양이다. 올 상반기 미분양 물량은 2만호 후반대에서 3만호 중반대까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분양 열기가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최근 들어 계속 감소하던 미분양 주택은 올 4월을 기점으로 다시 늘어나고 있다. 분양 물량이 늘고 있어서다. 지난 7월 정부는 ‘가계 빚 관리 방안’을 내놓고, 빚을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문턱을 높이기로 했다.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내년부터 정부가 가계빚을 줄이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제한하기로 한 탓에 건설사들이 물량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며 “하반기에는 분양 물량이 더 늘어나면서 미분양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은 결코 뜨거울 수 없다. 분양시장이 왜곡된 정보를 양산하고 있어, 뜨거워 보일 뿐이다. 아파트 분양광고에 가격을 명시하도록 규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격 없는 분양광고는 ‘유혹의 기술’일 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