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의 작은 실언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2015-08-21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박인비는 그랜드슬램 달성으로 세계여자골프 사상 가장 위대한 골퍼 중 한명이 됐다. 이로 인해 박인비의 말 한마디는 곧 큰 뉴스가 된다.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과 관련된 박인비의 발언은 꺼림칙하다. 올림픽은 우수선수가 참가하는 골프의 오픈대회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서다.

박인비가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됐다. 지난 8월 2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트럼프 텐베리 리조트 에일사코스에서 끝난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US오픈(2008·2013년), 나비스코챔피언십(2013년), LPGA 챔피언십(2013년) 등 세계 4대 메이저 타이틀을 전부 손에 쥔 것이다. 세계 여자골프 사상 7번째다. 이제 박인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자골퍼의 한명으로 모셔지게 됐다. 그랜드슬램은 모든 스포츠 종목 선수들의 꿈이다.

‘메이저타이틀 홀더’만 해도 엄청난 명예인데, ‘세계 최고권위라는 타이틀은 전부 쥐었다’는 건 무지무지한 업적이다. 박인비의 골프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파워’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육중한 체구에서 천천히 들어 올렸다가 V자 형태로 쾅하고 내려찍는 다운블로와 어슬렁 걸어가는 자태에서 동반자가 곧잘 주눅이 들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박인비의 일거수일투족은 세계여자 골프계에 뉴스가 된다. 그의 말 한마디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위에 올라섰다. 이런 점에서 이번 브리티시오픈 개막전 기자회견에서 박인비의 올림픽 관련 발언은 꺼림칙하다. 당시 AP통신 기자의 내년 리우 올림픽에 대한 질문에 박인비는 “세계랭킹 50위 이내에 든 선수라면 올림픽에 나가는 게 당연한데 현행 기준대로라면 그렇지 못해 세계랭킹 300위나 400위 선수가 세계 랭킹 16위 선수를 제치고 출전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즉시 세계로 퍼졌고, 국내의 많은 언론도 그대로 다뤘다. 문제는 너무 무식한 발언이었다는 점이다. 이제 세계여자골프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게 된 박인비는 앞으로 이런 발언을 조심해야 한다. 최근 생물학 권위자인 장수철 연세대 교수와 이재성 서울여대 교수의 공저인 「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이란 책이 화제다. 국문학밖에 모르는 학생(이재성 교수)이 생물학 강의를 들으면서 하는 엉뚱한 질문을 친절하게 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책이다.

무비판적 암기 위주의 과학에 접근하는 방식을 탈피해 새로운 패턴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에서 학생은 “포도당은 포도에서 나온 건가요?”라든가 “우성과 열성 염색체가 있다는데 열성 염색체는 우성보다 못한 건가요?”라는 등 원초적이고 어린애 같은 질문을 한다. 올림픽은 우수선수가 참가해 1위부터 5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골프의 오픈대회 같은 이벤트가 아니다.

내년 리우올림픽 골프종목의 참여조건은 남녀 각각 세계랭킹 60위 이내, 국가당 최대 2명이다.  그러나 세계랭킹 15위 이상을 다수 보유한 ‘골프 초강대국’은 특별히 배려해 4명까지도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국가는 남자는 미국, 여자는 한국 둘뿐이다. 이런 ‘특별배려’는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 더군다나 박인비 발언처럼 세계랭킹 50위 이내가 모두 출전해야 한다면 올림픽이 아니라 오픈대회가 돼 버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에 출전한 에릭 무삼바니(기니)는 간신히 물위에 뜰 정도의 왕초보였다. 개 헤엄으로 100m를 완영했을 때는 거의 익사직전이었다. 이게 올림픽이다.  박인비의 인터뷰 현장에는 한국기자도 여럿 있었다. 황급히 말리거나, 매니저가 있었다면 즉시 인터뷰를 중단시키고 주제를 돌렸어야 했다. 이걸 기사라고 보도한 모습은 한심하기까지 하다. 혹시 일부 골프 기자들도 골프 이외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 무언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