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대장의 독백 ‘대재앙’의 시작

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랙 호크 다운 ❷

2015-08-18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의 소재는 ‘모가디슈 전투’다. 160명의 미군 최정예 부대원(레인저ㆍ델타)과 2000여명의 소말리아 민병대가 1993년 10월 3일 오후~다음날 새벽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시장 한복판에서 맞붙은 시가전이다. 19명의 전사자와 80여명의 부상자를 냈을 정도로 치열했다. 이 전투 이후 미국의 대외개입 정책의 실효성과 정당성은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는 ‘모가디슈 전투’를 재구성한 마크 보우든(Mark Bowden)의 저서 「블랙 호크 다운 : 현대전의 진실 : 전원구출(Black Hawk Down : A True Story of Modern War : Leave No Man Behind)」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출판물은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다. 리들리 스캇 감독의 영화도 2001년 아카데미상 편집상ㆍ음향상 2개 부문을 수상했고, 영화비평가들이 선정한 ‘2001년 6번째 최우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작품성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다만 마크 보우든의 책과 스캇 감독의 영화가 진짜 ‘모가디슈 전투’의 ‘진상(A True Story)’을 담아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황량한 사막에서 소말리아인들의 시체들이 거적때기에 싸여 처리되는 비참한 장면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상황을 설명하면 이렇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30여만명이 굶어죽었다. 미군과 UN평화유지군이 투입돼 겨우 질서를 회복했지만 미군이 철수하자 다시 내전이 격화돼 부득이 미군 2만명이 재투입됐다.’ 미국의 공식입장과 마찬가지로 미군 최정예부대의 투입이 소말리아인들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내전의 전개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은 평가가 엇갈린다. 소말리아 사태를 다룬 많은 연구결과는 미군 투입 이전에 소말리아의 기아사태와 혼란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UN평화유지군과는 별도의 미군 추가배치는 ‘인도적’ 목적보다는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영화에서도 단편적이나마 이 논란을 고민한다. 모가디슈 비행장에 설치된 미군 사령부에서 최정예 레인저부대원과 델타부대원들은 ‘Fucking Irene’이라 명명된 작전을 준비한다. 미국에 적대적인 소말리아 최대 군벌 모하메드 아이디드(Mohamed Farrah Aidid)의 제거와 아이디드의 최고참모 2명을 생포하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부대원들이 피크닉을 온 것처럼 여유만만하다. ‘날아오는 돌멩이만 피하면 된다’고 시시덕대는 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군화에 자신의 혈액형 표찰을 부착하는 병사를 조롱한다. 작전지휘부도 이 작전이 30분 내에 성공적으로 종결되리라는 걸 의심치 않는다.

진지한 건 분대장 에버스먼(조쉬 하트넷)뿐이다. 그는 ‘미국은 소말리아인을 인도적으로 도와주든지 아니면 이들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걸 그저 지켜만 보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미국에 적대적인 아이디드의 제거’란 목표는 미국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독백은 곧 닥칠 ‘대재앙’을 암시한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opo.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