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선? 인지왜곡의 함정
貧티지 ‘동전의 양면’
2015-08-13 강서구 기자
빈티지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은 곧 사라져버릴 수 있는 옛 풍경을 사진에 담고 과거의 향수를 즐긴다.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겐 다른 공간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지만 누군가에겐 벗어나고 싶고 숨기고 싶은 삶의 치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빈티지(Vintageㆍ오래되고 값진 것). 한 시대의 독특한 스타일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사물이나 공간. 빈티지의 대략적인 정의다. 최근 빈티지 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빈티지 문화는 관광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동네ㆍ골목ㆍ철거예정지 등 과거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현대사회의 빠른 흐름과 경쟁적인 삶에서 벗어나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 복고의 유행도 빈티지 여행의 유행에 한몫하고 있다. 낡은 것과 옛것을 향한 애착이 빈티지 여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유행한 ‘응답하라 시리즈’ ‘토토가’의 성공도 이런 과거의 향수를 느끼려고 하는 심리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빈티지 여행이 유행하면서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가 새로운 관광명소로 주목 받고 있다. 그 결과, 경상남도 통영의 ‘동피랑 마을’ 서울시 홍제동의 ‘개미마을’, 중계동 ‘백사마을’ 등이 빈티지 여행의 명소로 등장했다. 실제로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사진 찍기 좋은 곳’ ‘걷기 좋은 곳’ ‘몇 남지 않은 달동네’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관광객은 빈티지여행을 통해 ‘다른 삶의 시간과 방식’을 체험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위안을 받는 경험을 한다.
빈티지여행을 즐기는 신민아(가명ㆍ29세)씨는 “복잡하고, 지치고, 혼란스러울 때 유명 휴양지보다는 한적한 곳을 찾게 된다”며 “무엇인가 생각하고 싶고, 따뜻한 느낌을 받고 싶을 때 빈티지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빈티지 여행에 관한 탐색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관광객이 빈티지여행지를 방문했을 때 느끼는 심리적 체험이 ‘아름다움’과 관련된 정서로 발견됐다. 또한 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선함’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이는 심리적 체험에서 나타난 인지왜곡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가난 즐기는 빈티지 여행
논문은 “어떤 상황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이성보다는 극단적인 감정에 따르도록 해 특정한 경향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인지왜곡”이라며 “관광객이 느끼는 심리와 진정성은 인지왜곡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빈티지여행지가 일반적인 관광지의 특성인 환경ㆍ편의시설ㆍ편의성ㆍ여건 등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을 자신의 기억과 경험 등 주관적인 정서로 투영해 진실한 삶이나 행복 등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빈티지 여행지가 관광객에겐 과거의 향수와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장소지만 현지 사람에겐 치열한 삶의 터전이라는 데 있다. 이른바 ‘가난한 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겐 빈티지 여행이라는 문화가 달갑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천 만석동에 위치한 ‘괭이부리마을’에서는 가난을 상품화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인천 동구청이 괭이부리마을에 ‘쪽방촌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동구청은 마을의 2층 주택을 1960~1970년대 생활공간으로 리모델링해 옛 생활체험관을 만들고 당시에 사용했던 흑백TVㆍ요강 등을 비치해 쪽방촌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했다. 다행히 계획은 비난 여론과 주민의 반발로 무산됐다. 무엇보다 주민이 겪어야 할 불편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괭이부리 마을을 포함한 빈티지여행지의 가장 큰 특징은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다. 냉난방 시설은 물론 기본적인 화장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건축물이 낡아 붕괴와 화재의 위험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난이 상품화되고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질수록 이런 치부를 고스란히 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중계동 백사마을에 거주하는 김성수(가명ㆍ72세)씨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하는 외부인이 반갑지만은 않다”며 “매일 살아가고 있는 마을 환경과 집이 외부사람에게 공개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게다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품화되고 있는 가난
임종연 (괭이부리마을 기찻길옆 작은학교 상근회사)는 “어린이날 마을을 방문한 어린이에게 ‘너희도 공부 못하면 이렇게 살게 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며 “가난하다는 이유로 비난 받아야 하는 주민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는 가난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1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234명을 대상으로 가난에 관한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31.5%의 학생이 가난의 이유를 ‘돈을 벌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서’라고 답했다. 또한 ‘직장을 잃어버려서(27.6%)’ ‘잘 배우지 못해서(17.7%)’ 등 가난의 원인을 대부분 개인 탓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손대규(37세ㆍ가명)씨는 “주민에겐 지긋지긋한 가난이 관광객에게는 흥밋거리나 구경거리가 된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생길 때도 있다”며 “각종 SNS에 사진을 올리면서 ‘가난한 사람의 마을을 경험해 보세요’라고 광고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빈티지 여행으로 삶의 위안 같은 것을 얻는 경우가 있다”며 “하지만 이런 문화가 그 마을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