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 위기국면 속 장남 경영수업 ‘시동’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2015-07-22 성태원 대기자
재계는 의사에서 보험경영자로의 변신에 성공한 신창재 회장에게 두 가지 큰 숙제가 있다고 본다. 3세 승계 작업과 미래 먹거리 찾기에 일정한 성과를 내는 일이 그것이다. 최근 그가 첫째 숙제 풀기에 나선 것으로 보여 아연 눈길을 끈다. 신 회장은 2010년 사별한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 중하, 중현(32)씨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중하씨가 이번에 경영수업을 받기 위해 교보생명 자회사인 KCA손해사정에 입사한 것.
교보생명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그는 외국계 금융사인 크레디트스위스 서울지점에서 2년가량 근무했다. 이곳 근무 기간을 인정받아 KCA손해사정에 대리로 경력 입사했다. 보험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가입 심사와 보험금 지급 심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보험 업무의 시작이자 끝인 가입과 지급 심사 실무를 익히게 하는 등 밑바닥에서부터 경영수업을 시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신 회장의 두 아들은 모두 미혼으로 현재 교보생명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나마 조금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체 신 회장이 공사公私(사생활과 경영활동)를 철저히 분리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어서 이번에도 조용하게 넘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언론과 시장의 관심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2010년 부인과 사별했던 신 회장은 2013년 11월 박지영(41)씨와 극비리에 재혼했다. 결혼식 한 달 뒤 임원회의에서 그는 “저 결혼했습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라고 말할 정도로 사적인 일을 감추는 스타일이다.
경영인 되기 싫던 경영인의 과제
하지만 오너 3세의 경영수업 착수가 어디 신 회장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일인가. 공정위에 따르면 재계 순위 38위(2015년 4월 기준ㆍ공기업 제외)인 교보생명은 13개 계열사 자산총액이 86조원에 달하는 국내 굴지의 금융전문그룹이다. 그런 만큼 예비 총수의 움직임은 언론과 시장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에 가서 총수 자리에 아들이 오를지 전문경영자가 오를지는 알 수 없다. 한국 재계 풍토상 아들이 오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신 회장도 서울대 의대 졸업(1978년) 후 보험 경영과는 상관없는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 등 의료분야에서 18년을 보내 사람들을 헛갈리게 했다. 의사로 잘 나갔지만 오너 2세들 중 장남이었던 그는 결국 교보생명 최고경영자로 변신하지 않았던가(그래픽 참조).
20년 전인 1996년(43세) 아버지이자 창업자인 고故 신용호 회장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교보 경영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2010년 5월호 커버스토리로 신 회장을 다루면서 “경영인이 되기 싫었던 경영인”이라는 표현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의 그를 두고 선친마저 “경영보다는 의사가 더 어울린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의사의 길을 선호했다.
신 회장이 교보 경영에 합류한 지 어언 20년이 됐고 그의 나이도 이제 60대 초반에 이르렀다. 두 아들은 30대 초ㆍ중반이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후계구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공시한 교보생명 지분구조를 보면 오너 일가 중 신 회장 지분이 33.78%로 절대적으로 많다. 그다음으로 신 회장 큰 누나인 신영애(66)씨 1.41%, 작은 누나인 신경애(64)씨 1.71% 등이다. 신 회장과 친족이 총 36.9%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신 회장의 두 아들은 보유 지분이 없어 그 의미에 눈길이 간다. 교보에 합류한 장남 중하씨의 경영수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차남 중현씨에겐 앞으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등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 재계 총수들이 대개 30년 안팎 재임한 것을 감안하면 신 회장은 이제 총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에 들어선 셈이다. 향후 경영권 승계를 놓고 두 아들과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갈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15년 총수 경력의 신 회장이 최근 몇년 동안 가장 골몰해 온 분야는 ‘미래 먹거리 찾기’다. 생보업계 빅3로 불리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중 소위 말하는 ‘든든한 울타리’가 없는 곳은 교보생명뿐이다. 생명보험 전문그룹이라 전문성이 있는 건 좋지만 외줄타기가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교보증권, 교보문고 등 계열사가 13개에 이르지만 모기업 교보생명 자산이 거의 90%에 육박할 정도로 모기업 의존도가 높다. 신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몰락 위기를 맞은 교보생명을 정공법으로 수습해 재계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2000년(47세) 회장에 취임해 외형 위주의 보험 영업문화를 고객보장 위주로 과감히 바꾸었다.
재무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철저한 내실 위주 경영으로 전환했다. 총수 15년 동안 의사가 환자를 돌보듯 고객만족 경영, 애프터서비스 경영 등을 밀어붙여 교보생명을 완전히 재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교보생명의 국제 신용평가가 A등급으로 높아졌고 ‘의사출신 보험업계 1등 오너 경영자’라는 개인적 명성도 쌓았다. 잘 나가던 의사생활을 접고 늦깎이로 보험 최고경영자로 변신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이뤄낸 업적이다. 감성경영, 인문학적 경영 등 그의 독특한 경영기법은 재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또다시 쇼크가 밀어 닥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와 저성장 기조가 바로 그것이다. 신 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보험 산업이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위기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인한 역마진 현상이 이어지면 4~5년쯤 후에는 여러 보험회사가 도산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대규모 부도를 맞았던 일본 보험업계 전철을 따라갈 수도 있다는 것. 1997~2001년 장기 저금리 탓에 닛산생명ㆍ도쿄생명 등 7개 생보사가 줄도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대안으로 신 회장은 우리은행 인수에 계속 관심을 보여 왔고,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검토에도 나섰던 것이다. 우리은행 인수건은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입찰을 포기해 입찰 자체가 무산됐다. 지배구조가 과점주주 형태로 얘기되자 별로 득 될 게 없다며 일단 관심을 접은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건에 대해선 내부 검토를 계속하고 있다. 정부 정책이 나오면 그때 가서 할지 말지를 결정할 방침. 보험이나 은행업은 일단 손을 대면 물러서기가 쉽지 않아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새사업 찾기’ 장기전 양상
관심사인 해외 진출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외국 금융사들과의 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될 때 해도 늦지 않을 거란 판단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보생명의 기업공개도 아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어렵사리 회사 재건에 성공한 그가 막 첫발을 내디딘 3세 승계 작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또 ‘저금리ㆍ저성장 쇼크’로부터 어떻게 탈출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