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호암까지… 경남기업의 ‘굴곡’
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2015-05-20 김우일 대우M&A 대표
전두환 정부의 명命에 따라 경남기업을 인수하려던 1983년 봄 어느날.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고교 동기동창이었다.
친구: “우일아, 나 대철(가명)인데. 오래간만이다. 어떻게 지내냐?”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기의 전화는 생뚱맞았다.
필자: “웬일이냐?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고?”
친구: “다 아는 수가 있지. 그건 그렇고 저녁 한번 같이 먹자.”
그래도 술자리는 부담이 없었다. 고교 친구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친구가 건넨 명함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경영관리팀 대리’. 필자가 알기로 공대를 졸업한 그가 정ㆍ재계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의 경영관리팀에 있다니, 의외였다. “나 말야. 원래는 삼성전자 기술연구소에 있었는데 어느날 회장님이 직접 부르시길래 찾아갔더니, 비서실 경영관리팀으로 근무하라는 거야. 홍두깨같은 지시라 어안이 벙벙해 있었는데 특별미션을 주시더라고…. 그래서 우일이 너에게 전화한 거야.”
그가 말한 특별미션은 다음과 같았다. 당시 삼성그룹에 가장 필요한 부문은 건설 업종이었다. 삼성그룹에 건설 업종이 없었던 건 ‘섬세한 제조업’에 흥미를 가진 이병철 창업주의 성품과도 일맥상통했다. 하지만 당시 중동 오일 달러를 겨냥한 해외건설업은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았다. 무역ㆍ제조ㆍ금융ㆍ전자ㆍ중공업 등은 잘 키워냈지만 건설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삼성그룹과 이병철 창업주로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게다. 그렇다고 무작정 건설사를 세우는 것도 리스크가 있었다. 현대건설ㆍ동아건설ㆍ대림산업ㆍ대우건설 등의 사세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병철 창업주는 괜찮은 건설사의 인수ㆍ합병(M&A)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그 레이다망에 경남기업이 포착된 거였다. [※ 참고: 흥미로운 건 경남기업의 M&A 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했는데, 삼성그룹이 이를 어떻게 눈치챘느냐였다. 과연 국정원보다 정보력이 더 뛰어나다는 삼성그룹 비서실다웠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시장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던 경남기업 브랜드에 ‘삼성’이라는 무늬만 입힌다면 금상첨화였다.
하지만 삼성에도 난제는 있었다. 대우그룹이 경남기업을 인수한다는 정보는 입수했지만 아는 것이라곤 주무자의 이름(김우일), 파격적 특혜제공 두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삼성그룹 측은 필자의 동기를 보내 인수조건을 알아내려 했고, 이를 토대로 청와대와 담판을 지을 요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친구는 수십차례 필자와 접촉하면서 인수조건 관련 자료를 넘겨달라고 했다. 대신 삼성그룹으로 이직하면 파격적 연봉과 직급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필자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고, 그 친구는 소기의 미션을 수행하지 못해 삼성그룹 비서실을 떠났다. 만일 필자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경남기업의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우그룹이 아닌 삼성그룹에 안겼다면 경남기업의 역사와 성완종 전 회장의 인생은 어찌 됐을까.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