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퇴직자의 연륜을 사라

유순신의 CEO story

2015-04-15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숨은 고수들이 많다. 이들의 축적된 지혜와 역량은 난제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경기침체나 실업난을 이유로 이들을 배제하기보단 이들의 연륜과 경험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때다.

A씨는 국내 대기업에서 사장으로 임기를 마친 후 3년간 고문 예우를 받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나이는 많지만 고문으로 계시기 아깝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는 임기가 끝나는 해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런데 얼마 전 A씨로부터 “점심대접을 할 테니 한 번 모이자”는 연락이 왔다. ‘뭔가 좋은 일이 있나’ 궁금해하며 참석했다. 아니나 다를까. 연초에 그룹 회장이 부회장 자리를 제안하며 도움을 요청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국내에서는 60세를 훌쩍 넘어 퇴직한 기업에 재입사하는 일이 흔치 않다.

A씨에게 “혹시 예상했던 일이었냐”고 질문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전혀 기대도 안 했습니다. 올해 고문 임기가 끝나면 이 모임도 나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축하 인사에 그는 이렇게 화답했다. “고은 시인의 시 중에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저도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노를 놓았다가 다시 잡으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비록 회사가 어렵지만 원래 태평성대에는 예비군이 필요 없는 법입니다. 어려울 때 제 경험으로 도움이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50대 남성 우울증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은퇴나 노후 고민이 현실로 다가와서다. 명예퇴직ㆍ과도한 경쟁ㆍ가족 부양에 대한 압박감이 심한 것도 이유다. 하지만 이런 중장년층을 소외시키는 건 사회적 낭비다. 청년 못지않은 의지와 열정, 젊은이를 능가하는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만이 인재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편협한 사고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숙련된 인재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많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중장년층을 인재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청년 실업에 더해 중년 백수 현상까지 구직난과 취업 전쟁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다르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가 완전고용으로 간주하는 범위라는 ‘실업률 5.5%’를 기록하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전년 대비 14.2% 확대할 계획이다. 1990년대 ‘채용 버블’ 시절처럼 크루즈선을 동원한 채용설명회까지 추진하는 기업도 있다.

일손 부족 때문에 ‘우선 뽑고 보자’라는 반응이 생길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인재가 부족해지는 시기가 올 게 분명하다. 이를 대비해 중ㆍ장년층의 경험과 경력이 담긴 노하우를 활용해야 할 때다. 무엇보다 우리의 시각과 사고부터 바뀌어야 앞으로 다가올 ‘구인난’에 대비할 수 있다. 헤드헌터 일을 20년 넘게 해 오면서 비록 퇴직은 했지만 훌륭하고 대단한 이들이 많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쓰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오랜 직장 경력을 가진 퇴직자들을 어떻게 사회로 다시 돌려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몇년전 사회적 기업인 ‘시니어앤파트너즈’를 설립, 중ㆍ장년층에게 맞춤형 취업을 지원하고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돕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가치를 창출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자원은 더 이상 자본ㆍ토지ㆍ노동이 아니며 인적자원에 의해 창출되는 지식”이라고 했다.
 
퇴직자는 연륜과 경험을 쌓아온 유능한 인재다. 이들이 잉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자양분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들이야말로 진짜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으로 커다란 가치와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이 인재로 활용되는 시대를 기대해 본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susie@younpartners.com